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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Dec 04. 2019

#49. 11월은 이상한 달

2019.12.03.

지난달은 좀 이상했다. 11월이 11월 같지 않고 12월처럼 느껴졌달까? 이 달이 지나면 12월은 건너 뛰고 곧장 2020년이 도래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꾸만 날짜를 착각했다. 새해 첫날에 등산을 가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럼 당장 다음 주네?”라고 반문하기도 하고, 월 말에 여행을 떠나는 동료에게 “새해를 해외에서 맞겠구나”라고 해서 시차가 한 달인 나라는 없지 않겠냐는 신소리를 듣기도 했다. 올해가 대단히 끔찍해서 얼른 떠나보내고팠다거나 내년에 백화초엽이 만발한 꽃길이 예정되어 있다거나,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신기할 따름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띄엄띄엄 봤던 12월은 제시간에 도착했다. 속으로는 진작에 안녕을 고했던 모양인지 괜히 보너스의 달을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스트리트 파이터의 자동차 부수기나 소닉 더 헤지혹의 보너스 스테이지처럼 그다지 달갑지도 그렇다고 막 귀찮지도 않은 그런. 숙련도에 따라 개이득을 볼 수도 있지만 결과가 어떻든 어차피 대세에 지장을 주지 못함을 알기에, 손가락이 부서지도록 연타를 갈기거나 미궁에서 퇴출되지 않으려 전력을 다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시큰둥함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내 상태와는 반대로 벌써부터 12월 일정표는 가득 차있다. 찬찬히 훑으니 옅은 한숨을 뱉으려다가 흡 들이킨다. 바쁘지 않았다면 무기력에 사로잡혔을 가능성이 농후하니 이 또한 기쁜 일이며, 12월의 막바지로 향할수록 즐거운 이벤트들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늘 그래왔듯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사실을 육안으로 확인하니 조금 힘이 나는 것도 같다. 소풍은 예정만으로 소임을 다한다는 말은 진짜였다. 방금 내가 지어낸 거긴 하지만.

캘린더 말고도 내 상태와 다른 게 있다. 턱걸이를 하려고 매일 두 번은 방문하는 회사 뒤편 정원이 그렇다. 커다란 나무들이 아직 알록달록 잎새들을 제법 머금고 있어서 여전히 가을의 정취가 묻어난다. 낙엽들도 퇴색되거나 바스러지지 않고 남아, 행여나 가을을 놓친 이가 있다면 얼른 자기를 밟아 끝물이라도 맛보라고 부추긴다. 이러니 정원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래, 가을도 아직 안 저물었는데 내가 무어라고, 무슨 수로 해를 앞세우겠는가’하며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달력이 계절을 추월할 리 없다는 말은 진짜였다. 역시 방금 내가 지어낸 거긴 하지만.

날씨는 부쩍 추워졌다. 엄동설한에도 발목양말을 고수해 온 나도 최근에는 길고 두터운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선다. 어라, 그런데 이게 꽤나 포근하고 편안하다. 습관이 되어서였는지 발목을 감싸면 묘하게 답답하고 불편했었는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완연한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 그런가. 어쩌면 몸이 이제 고집(固執) 그만 피우고 나이에 맞게, 계절에 맞게 옷차림을 갖추라고 나를 꼬집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굳게(固) 잡고 있던(執) 걸 놓을 때가 온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을 2019년 최후의 환절기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감기 조심해야지. 주위에 건강한 심신으로 활기차게 새해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진짜임이 분명하다. 누가 지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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