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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Dec 06. 2019

#51. 인물을 찍는 일

2019.12.06.

인물을 담아볼 것. 다음 사진 수업 때까지의 숙제다. 특정한 누군가를 모델로 하기도 애매하고 길거리에서 무턱대고 카메라를 댈 수는 없으니 난감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다가 고안한 방법은 남대문 시장으로 가는 것이었다. 회사와 가깝기도 하고, 점심시간이면 늘 북적대는 그곳에서라면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나마 눈치 좀 덜 보고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상인들과 세계 각국에서 본 관광객들은 내가 사진을 찍든 말든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셔터를 누르기는 했지만. 사진을 찍으며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꽈배기나 호떡, 떡볶이, 갈치조림, 선짓국 등 시장의 음식을 사 먹기도 하면서 제법 신나게 나들이를 여태까지 네댓 번했다. 그동안 느낀 것들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나는 비겁하다. 모르는 이에게 카메라를 겨눌 때면 늘 긴장된다. 혹여나 상대가 항의하지는 않을까. 시비에 휘말려 욕을 들어 먹거나 얻어터지지는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그런 공포감을 갖고 있다 보니, 물리적인 위압감이 더 낮아 보이는 대상을 더 편하게 촬영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나보다 힘이 약해 보이는 사람을 피사체로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얄팍하다. 음식이든 물건이든 무언가를 사고 비용을 지불한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마음 놓고 과감하게 사진을 찍게 된다. 한낱 상품의 구매자에 불과한 주제에 상점과 판매자를 촬영할 권리까지 사들인 양 행동하는 것이다. 상인의 입장에선 불쾌하더라도 무어라 말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이것도 갑질의 일종이 아닐까. 고민이 깊어진다.

나는 서투르다. 몇 차례 훑어본 게 다면서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남대문 시장이 늘 똑같아 보여 갈수록 흥미를 잃게 되었다. 이 얘기를 형들에게 했더니 “한 곳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그 공간이나 시간의 일원이 되어야”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말도 뒤따랐지만 스스로가 좀 부끄러웠다. 저 피드백이 단순한 사진 이야기로만 다가오지 않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을 담는 건 재미있다. 계속해보고 싶다. 실제로 모든 사람이 천차만별이기도 하고 결과물을 보면서 여러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사람은 여기 왜 왔을까, 뭘 하러 왔을까, 누구와 함께 왔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절묘한 우연의 순간도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이건 나도 인간이라 그렇게 느끼는 것이려나.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게 궁금하기도 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찍혀 있는 사진이 세상에 과연 몇 장이나 있을까?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이름난 명소에도 방문했었으니 못해도 백 장 이상은 될 텐데. 그런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주저 없이 신청할 것이다. 우연이 포착한 내 그림역사를 훑는 기분일 테지. 그걸 보는 난 어떤 감정일까. 그게 제일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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