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Jae Shin Dec 11. 2019

#53. 대구행 신혼열차

2019.12.08.

인간관계에도 주인이란 게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녀석과 나의 관계는 내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지분으로 따져봐도 후하게 쳐줘야 9 대 1쯤 될까. 너무나도 쉬이 끊어질 수 있고 어찌 보면 그 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사이인데, 벌어지는 틈이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틈틈이 공백을 채우고 다리를 놓는 역할을 도맡은 것이 그 녀석이니 소유권 분쟁 따위는 언감생심. 곱씹을수록 놀라운 끈기라 감탄이 나오는 그 녀석은 오늘부로 새신랑이 된 김휘근이다.

휘근이는 내 군대 후임이다. 처음으로 맞이한 후임이자 가장 오래도록 군생활을 함께한 전우다. 2008년 봄부터 2009년 겨울까지 머리 빡빡 민 채로 동고동락했고 개구리 모자를 쓰게 된 뒤로도 드물게 만나지만 마음은 가까운 사촌지간처럼 지내고 있다. 그간 훌륭한 삶을 살아왔다 자부하지 못하는 내게 그중에서도 가장 쓰레기와 같이 살았던 시기를 꼽자면 군대 2년인데, 그것의 산증인이면서도 변함없이 나를 찾아준다는 점이 대단하고 고맙다.

대구 토박이인 휘근이는 향상심으로 가득해 늘 무언가를 목표로 열심히 살아간다는 점에서 일견 존경스럽기까지 한 동생이다. 경북 가부장의 특성 같기도 한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을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언제나 앞장서는 편이다. 불같은 성격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마찰을 빚거나 헛발질을 하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의 연차가 쌓이면서 그 부분도 많이 나아진듯해 참 다행이다.

그보다 더 다행인 것은 그가 멋진 반려자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이런 표현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지만, 어쨌든 그에게는 과분해도 한참 과분한 이와 남은 생을 기약하게 되었다. 신부인 희영과는 결혼식 당일을 제외하면 식사와 술자리를 각각 한 차례씩 하며 그리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그래도 그런 확신이 든다. 동생이 좋은 짝을 만났다. 그래서 절이라도 크게 올리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다. 특히 그 그 그… 아무튼 그 옛날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을 때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건 그런 까닭이다. 둘 모두가 내게 고마운 사람들이니까, 그런 두 사람에게 보답할 수 있는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써드파티 형들도 함께 대구행 KTX에 몸을 실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나들이였다. 비록 당일치기 대구행의 여파로 원래의 계획은 조금 틀어졌지만 뭐 어떤가, 좋은 날인데. 끝.


매거진의 이전글 #52. 내일도 물을 올릴 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