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4.
언젠가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다. 소아마비로 인해 걷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엄마는 자식을 걷게 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대학병원도 가보고 한의원도 가보고 민간요법에도 의지해보고 몸에 좋다는 보양식은 다 챙겨서 먹여보았지만, 오래도록 아이는 두 다리로 서지 못했다.
몇 년을 허비하고 어느 재활원으로 아이를 보냈다. 공인된 의료기관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다수 효과를 보았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활원에 아이를 입소시킨 것이다. 몇 개월이 지난 뒤 엄마는 전화를 받았다. 와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보라는 연락이었다. 엄마가 재활원의 문을 열었을 때 아이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온전히 스스로의 두 다리로 그녀에게 걸어왔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자연스레 엄마가 이런 반응을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당장 달려가 아이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겠구나.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엄마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다가오는 아이로부터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단 몇 초라도 더 아이의 걷는 모습을 두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일화를 접한 이후 훌륭한 이야기는 어때야 하는가, 어떤 이야기가 훌륭한 이야기인가를 곱씹게 되었다. 특히나 인간에 대한 관찰, 통찰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조조영화로 제임스 맨골드의 <포드 V 페라리>를 봤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선 보람이 차고 넘칠 정도로 대단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도 위 언급한 일화와 같이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배반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혹시나 이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이쯤에서 글을 그만 읽으셔도 좋겠다.
포드의 레이싱팀의 담당자가 된 캐롤 셸비는 첫해 목표 달성에 실패한다. 하지만 재차 기회를 부여받았고 르망 제패를 위해 차근차근 순조롭게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었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켄 마일스의 레이싱 참가를 무산시키고자 하는 부사장이 레이싱팀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어, 헨리 포드 회장과 함께 그것을 못 박기 위해 현장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켄 마일스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드라이버지만 충동적인 성격 탓에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우려가 있다고 부사장은 판단하고 있다.
셸비는 르망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마일스가 꼭 필요하다고 회장을 설득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그를 스포츠카 조수석에 태워 이 레이싱이 얼마나 빠르고 격렬하고 위대한 것인가를 체감시키려는 계획이다. 팀원 전원의 합심 하에 회장에게 레이싱의 맛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한 셸비는 뜻을 전하기 위해 차를 잠시 세운다.
이 대목에서 나는 회장이 “정말 짜릿하구먼!”하고 탄성을 지를 줄 알았다. 영화 속 그는 큰 소리를 내었는데 그건 환호가 아니라 엉엉 울음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였던 회장이 꺼이꺼이 목놓아 운 이유는 포드의 창설자이자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라서다. 아버지도 이 압도감을 느껴봤어야 했다는 아쉬움과 죄스러움이 좁디좁은 시트에 구겨 넣어진 그를 울게 한 것이다.
인간은 단순하지 않고 다 다르다. 그래서 재밌다. 찾아보니 이 장면에 대해 ‘Outstanding Scene’이라 평하는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있다. 인간은 단순하지 않고 다 다르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건 대체로 다 좋아 보이나 보다. 그러니 이야기란 무릇 인간이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포드 V 페라리>는 전적으로 그렇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