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6.
오른쪽 엄지를 자꾸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가로로 제법 길게 그어진 자국의 이물감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매형의 생일을 맞아 가족 식사를 했는데 기념 선물로 산 와인을 따다 벤 곳이다. 상처가 꽤 깊었는데 이제 통증은 전혀 없고 살도 붙어서 잘 아물고 있다. 딱히 흉터가 될 것 같지도 않다. 다행이다.
손이 베인 것을 확인한 누나는 조카들에게 “삼촌 피 난대, 반창고 붙여주자!” 외쳤다. 놀이를 하자는 듯 경쾌한 외침이었다. 예린이와 도준이는 한달음에 달려와서는 상처를 구경하고 서로 자기가 반창고를 붙이겠다고 난리였다. 축제라도 열린 양 둘은 흥분 상태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평생 피를 본 일이 몇이나 되겠는가 싶어 이해가 갔다.
결국 예린이가 감아준 노란색 반창고에는 낯익은 캐릭터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의 방 문에도 붙어있는 <치링치링 시크릿 쥬쥬>의 주인공들인 쥬쥬와 릴리, 로사 그리고 아이린이다. 쥬쥬는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동화나라의 봉인을 풀어야 한다. 봉인을 푸는 방법은 비밀의 꽃을 모두 모으는 것이고, 비밀의 꽃은 미션을 완수할 때마다 피어난다. 어쩌면 조카들은 내 손에 반창고를 붙이는 일을 하나의 미션으로 여겼을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어떡해!” “내가 해줄래!”하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회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며칠이면 흔적조차 남지 않고 기억에서도 사라질 이까짓 생채기에 그 난리였다니. 물론 나보다는 ‘반창고를 직접 붙이는 행위’가 주된 관심사였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크기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아픔에는 덤덤하고 타인의 아픔에는 유난스러운 게 여러모로 낫지 않겠나, 하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