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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Jan 28. 2020

#66. Much more than an athlete

2020.01.28.

상상놀이는 내게 늘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이 잦았던 유년에는 온갖 것들을 머릿속에서 뒤섞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놀았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힙합, 짱구는 못말려, H2, 로보캅, 타이의 대모험, 이웃집 토토로, 토이스토리, 바람의 검심 등 내가 좋아했고 즐겨보았던 여러 작품들을 한 통에 욱여넣고 마구 흔드는 것이다. 덕분에 흰둥이를 키우는 베지터와 역날검을 휘두르는 윤대협과 짱구와 협동해 우주를 지키는 버즈라는 끔찍한 혼종들이 속속 탄생했고, 나의 외로움은 점점 옅어졌다.

조금 더 나이가 든 이후로는 내가 주인공인 그림을 그리곤 했다. 중학생 때도 군인일 때도 불과 몇 달 전에도, 그 그림은 항상 비슷했다. 농구선수 또는 축구선수가 되어 은퇴할 때까지 오직 한 팀을 위해 뛰고, 데뷔와 동시에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남기고, 스스로의 젊음과 정열을 바친 도시에서 영원히 사랑받고,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다시 한번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삶.

내 상상에 가장 근접한 사람, 아니 내 상상 따위는 아득히 초월한 사람, 한때는 지독하게 미워했으나 어느새 존경하고 있던 사람. 5번의 NBA 챔피언십, 2개의 올림픽 금메달, 하나의 오스카를 거머쥐고도 41세에 불과한, 코비 브라이언트. 그가 며칠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네 딸 중 그를 가장 닮았다는 지지를 포함한 여덟 명과 함께.

안개가 짙었음에도 불구하고 헬기를 띄운 것이 원인이었다. 그는 본인이 운영하는 체육관인 맘바 아카데미로 향하고 있었다. 한 시라도 빨리 도착해 제자들에게 농구와 ‘맘바 멘탈리티’를 전하고 싶어 서두른 것으로 짐작된다. 농구에 할애하는 시간과 가족에 헌신하는 시간 양자를 다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LA의 극심한 교통 체증을 피해야 했고, 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그는 헬기 이동을 선호했다고 한다.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애도를 표한다. 나는 그것들을 계속 찾아본다. 르브론 제임스의 트윗, 손대범의 칼럼, 지미 키멜의 헌정 영상부터 스테이플스 센터를 가득 메운 인파 같은 것들을 멈추지 않고 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슬픈지는 잘 모르겠다. 딱히 어떤 감정이 들진 않는다. 그냥 자꾸만 보게 될 뿐이다.

그러기를 한참, 그의 죽음에 대한 엘렌 드제너러스의 애도를 보면서 비로소 울컥하는 마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태어난 날에 오랜 친구를 잃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짧고 부서지기 쉬우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일을 맞이하게 될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고. 그러니 우리는 생일을 기념할 필요가 없다고. 그보단 매일매일을, 하루하루를 기념하자고.

코비도 이걸 바랄까? 분명 그럴 것 같지만, 정답을 구할 길은 없다. What can I say, Mamba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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