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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Jan 17. 2020

#64. 거품도 품어봐야

2020.01.15.

거품도 품어봐야

결코 이루어질  없는 소박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세기말을 다시 살아보는 것이다. 학번으로 따지면 대략 95학번 쯤이 적절하다. IMF 경제 위기가 도래하기 , 전무후무한 호황 속에서 ‘ 나은 내일 당연히 보장되리라는 믿음을 가진 채로 미친 듯이  , IMF 1900년대 끝자락이라는 거대한  요소가 주는 기이한 감각 속에서 진짜 개썅마이웨이로 살고 2002 한일 월드컵의 열기를 혈기왕성한 이십  중반의 나이로  없이 즐긴 뒤에 현실로 복귀. , 짜릿하다.

그보다 조금   소원이 하나 있다면 버블이 붕괴되기 전의 일본을 살아보는 것이다. 일본에 가난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결코 상상조차   없는, 실상은 달랐다고 하지만 어쨌든, 역사상 최대의 호황기  하나.  유명한 1987 코카콜라 CM 속의 일원이 되어 끝없이 샘솟는 돈을 펑펑 써재끼고, 그에 따라 동시에 범람하는 압도적으로 쓸데없고 기이하도록 아름다운 영화와 만화를 비롯한 여러 문화들을 향유하고 싶다. 그렇게  10년을 살고 현실로 복귀. 후유증이 심히 걱정되지만 그마저도 훈장일 테다.

농담조로 쓰긴 했지만,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시기를 인생의 전성기라   있는 청년의 몸으로 통과해보는  실로 부러운 일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버블 세대들은 불황이 닥쳐도 그때의 거품을 상징 자본, 문화 자본 또는 매력 자본의 형태로 칭칭 두르면서 여전히  나간다. 경제적인 부를 기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깝지만 어쩔  없다고 생각한다. 은수저도 금수저도 아닌 시대의 수저들인데,  어찌하겠나.

레트로로 향유되는 것도 대개는  시절이다.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경제적인 풍요가 문화의 질과 다양성을 뒷받침했으니, 언제 돌아보아도 그때의 유물에서는 다른 때의 그것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함을 발견할  있다. <패트레이버>, <아키라> 같은 미래 세계를 그린 작품들은 고사하고 순정만화인 <오렌지 로드> 애니메이션의 작화만 봐도 때깔부터 다르고, 시티팝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을 것만 같다. 물론 화려함 뒤에 감춰진 천박함도 넘쳐흘렀겠지만, 후세대의 일원으로써 그마저도 궁금하고도 궁금하다.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릴 늘어 놓는고 하면, 일본 레트로 게임기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관석과 쿠시카츠에 하이볼을 곁들이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딱히 버블에 대한 이야기를  것은 아닌데  그랬을까, 아무튼.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파리>에서 길은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활발히 활동하던 1920년대를 동경한다. 그는 소원을 이루지만, 그가 이상향으로 여겼던 그곳에서 만난 아드라이나는   이전을 갈망하며 떠나 버린다. 결국 과거를 좇는 것은 허상을 품으려는 것이니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가 읽히는 대목이지만, 그래도 나는 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거품도 품어봐야 그게 거품인지   아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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