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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Feb 21. 2020

#72. 가면을 가리키며 웃기

2020.02.21.

무대를 즐기는 편이다. 유치원이나 학교 소풍, 수련회, 운동회 등을 준비할  언제나 손을 번쩍 들었다. 릴레이 계주를 뛰고 농구, 축구 대회에 나서고 유승준의 노래에 맞춰 안무를 추고 나이키나 베이비, 원킥 투킥 쓰리킥 같은 비보잉 기술들을 어설프게나마 구사하기도 했다. 물론 남고로 진학하자마자 교내 행사를 향한  열정은 사라졌지만.

언제나 관심을 갈구하지 않고는  배기는 중증의 관심병을 타고난  첫째 이유일 테다. 수업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고 어떤 멘트로 아이들을 웃길 것인가 만을 궁리한 것도, 입김을 뿜어 가며 되지도 않는 윈드밀을 연습하느라 무릎과 등을  갈았던 것도  사랑받고 관심받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대가 주는 어떤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꿈꿨다.  재미있고  활발하고  자신만만하고  똑똑하고, 아무튼  나은 존재가   있기를 갈망했다. 무대는 내게 그런 ‘  있는 자유를 주었던  같다. 평소라면 깜냥도 안되고 창피하기도 해서 시도할  없는 여러 가지를 무대를 핑계로, 사람들 앞에 섰다는 핑계로 펼쳐 보일  있었다.

오래도록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아는  잘난 척하면서 관심받고 싶고, 인간 신승재가 아닌 ‘털보라는 페르소나를 입고 다만  분이라도 내가 ‘라고 여기는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다. 양자가 서로 엄청나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분명한 차이가 있고,  사이를 유영하는 일은 꽤나 신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가끔은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스스로의 인식에서도 그렇고 타인의 시선에서도 그렇고, 때때로 균형이 무너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 비대칭의 상황을 겪으면 내가 상처를 받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다거나, 크건 작건 아무튼 무엇이든 흔적이 남는다.  자국은  오래 남는다.

물론 ‘털보라는 페르소나는 인간 신승재에게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었다. 애초부터 가면을 쓰자! 하고 결심한 바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의  다른 자아로써 나를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이게 아니었다면  주제에 어찌  천명에게 매주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며, 수십 명의 사람들 앞에서 시인과 함께 시를 읽고 술을 마시며 떠들 것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균형은 필요하다. 요즘은 그것을 맞춰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딱히 ‘ 이제 슬슬 균형을 잡아볼까!’하며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합일인지 분리인지 방향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니 순조로운지 엇나가고 있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다시 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은 필요하고,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음은 자각하고 있고,  미동이 내게 일종의 편안함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니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대책은 없지만 해피한 기분으로 엔딩 크레디트를 훑을  있기를 고대하기로 한다. 고대로 도로 아미타불이 되더라도 당장은 이렇게 순진한 마음으로 웃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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