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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Feb 27. 2020

#73. 중간에 내릴 수 없다네

2020.02.27.

생각해보면 자폐 증상이 있었던  같다. 엄마가 말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도 꽤나 오래도록 그랬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돌봄을 받을  없는 환경에 놓였기에 일찍 알았던  같다고 했다. 어차피 내가 떼쓰고 무언가를 요구해봐야 원하는 바를 얻을  없다는 사실을.  그래도  힘든데 나라도 죽은 듯이 있는  도움이 되리라고 본능적으로 깨닫고 스스로를 스스로가 고립시켰던  같다고 했다.

정말로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가만히. 저기 앉아 있으라고 하면 거기 앉아서 하루 종일 물도 마시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고 바닥만 보면서  시간이고 그냥 앉아만 있었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과 오빠가 말을 시켜도 묵묵부답,  대체 뭐가 문제니 누가 성질을 내면 흠칫했다가도 이내 추스르고  부동자세를 유지했다고 한다. 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런 자신이 창피해서 교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운동장 구석 벤치에 앉아 다른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귀가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 언제나처럼 우두커니 있는데 같은  아이가 다가와 “ 학교 왔네?” 반갑게 인사하며 교실로 이끌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적응을 못했다 한다. 알을 깨게  계기는 육성회비였다고 한다. 집에 돈을 달라는 말을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마감 전날 내일 제출하지 않으면 학교를  이상 다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이상한 동물의 울음 같은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고 한다. 학교 가게  달라고,  주면  쫓겨난다고.

처음 보는 딸의 모습에 당황한 할머니는 엄마를 겨우겨우 진정시키고 꼬깃꼬깃 쌈짓돈을 쥐여줬다고 한다. 엄마가 기억하기로는 그날부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목소리를 내고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고 한다. 드디어 세상 밖으로, 아니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것이다.

지난 주말 찍은 롤러코스터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떠올렸다. 꾸역꾸역 사람들을 싣고 올라가 기어이 추락하는 롤러코스터처럼 어린 엄마도 부지불식간에 많은 것들을 떠안은  낑낑대며 어딘가를 오르고 있었고, 정점에 이르러 급가속해 굉음과 함께 쌓아두었던 것을 폭발시켰다는  때문이리라. 하나는 천장을 찍은 뒤에 하나는 바닥을  후에 변화가 찾아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타인의 삶의 굽이 굽이를 들여다보는 , 한편으로 고통스러우면서도 어찌할 도리 없이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시선을 끄는 부분은 롤러코스터가 낙하하는 바로  찰나다. 무엇이 속도를 바꾸어놓았을까, 무엇이 방향을 바꾸어놓았을까 무엇이, 국면(局面) 전환시켰을까. 바둑판의 형세를 뒤엎은 신의  수는 누가 어디에 어떻게 두었을까.

결국   수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수부터 복기해야만  것이다. 차근차근 찍혀온 흑과 백의 점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묘수가 묘수일  있었을 테니까. 길고  대기줄을 감내해야만, 손에 땀을 쥐는 상승을 인내해야만 특별한 스릴을 맛볼  있는 롤러코스터의 원리와도 비슷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미 저마다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있는 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무어라 이름 붙일까, 괜한 고민을 하게 되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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