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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Jun 16. 2020

#77. 틈틈이

2020.06.16.

정원으로 가는 길이 막힌 지 세 달이 다 되어 간다. 입주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뒤부터다. 예방 차원에서 취한 조치인 것 같은데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관리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어쨌거나 1층에서는 경호원들이 모든 출입자를 열 감지 카메라와 육안으로 체크할 수 있으니 방역을 담당하는 이들에겐 반드시 필요한 안전장치일 것이다.

덕분에 턱걸이를 하러 가는 길이 험난해졌다. 출입증을 찍고 나와 두 개의 문만 열면 5분 내로 철봉에 다다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1층으로 내려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간 뒤 대략 아파트 6층 정도의 높이가 되는 야외주차장을 뱅뱅 둘러 올라가야만 정원에 진입한다. 여기까지 빠른 걸음으로 10분이 소요된다.

철봉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진입 포인트부터 철봉은 말 그대로 끝과 끝이다. 제법 울창한 숲처럼 느껴지는 길을 또 5분은 걸어야 드디어 목적지 도착이다. 요즘같이 후덥지근한 날씨엔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좋은 점도 있다. 우선 눈에 띄게 정원이 고요해졌다는 것. 원래라면 꼭 한 두 명은 있었는데 이젠 사람이 거의 없다. 하긴 누가 구태여 그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오겠는가. 게다가 나 역시 그 먼 길을 누군가에게 함께 가자고 청하기는 미안하니 항상 혼자인 터라, 자의반 타의반 숲속의 고독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턱걸이 한 세트를 하고 하늘을 구경하고, 팔 운동 한 세트를 하고 나뭇잎 흔들리는 걸 보고, 평행봉에 조금 올랐다가 바닥에 비치는 그림자를 관찰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이따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의 타무라가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조니 워커는 나타나지 않고, 세상과 동떨어진 그와 달리 난 업무로 인해 울리는 휴대전화에 속박된 신세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급한 연락에 헐레벌떡 복귀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엄밀히 따지면 농땡이 피운 내 잘못이지만, 그럴 때면 어휴 내 팔자야 한숨을 내쉬며 발길을 재촉하곤 한다. 그래도 이걸 포기할 수는 없다. 턱걸이를 이틀만 쉬어도 양치를 하지 않은 듯한 찝찝함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그보단 틈틈이 맞이하는 이 ‘틈’이 내겐 구원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근 몇 개월 직장 생활이 참 재미없다. 일은 돈 벌려고 하는 것, 돈 버는 건 원래 힘든 것, 회사 다니는 게 재밌으면 내가 회사에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 것. 입사 전부터 대략 이런 마음가짐이었지만 그래도 최근엔 너무하다시피 재미가 없다. 늘 웃고 농담을 건네던 녀석이 무표정으로 일만 하다 집에 가니, 동료들이 무슨 일 있나 걱정할 정도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선 안되는데 이런 걸 보면 난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한 숨 돌릴 공간이 있다는 게, 그 공간을 찾을 이유가 있다는 게, 그 공간에서 할 일이 있다는 게, 그 일이 스트레스 해소에 꽤나 도움이 된다는 게 다행이다.

지난 일요일에 제임스가 작년에 찍은 내 사진을 보면서 “지금보다 이때가 확실히 작아보인다.”라고 말했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았다. 딱히 벌크업을 하려고 턱걸이를 해온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되었다.

조금 위안이 된다. 묵묵히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내가 달라져있었다는 사실이. 사회생활도 비슷하겠지. 버티고 견디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으며 일할 줄 아는 내가 되어있겠지. 웃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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