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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Sep 13. 2020

#79. 정말 맛있네요

2020.09.12

새벽같이 일어나 안동에 다녀왔다. 벌초를 하기 위해서다. 그간 갖은 핑계를 대며 빠져왔었는데, 여차저차해서 이번엔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네시 반쯤 출발해 벌초지에 도착하니 여덟시 반 정도가 되어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려, 우비를 뒤집어쓰고 산을 올랐다. 나의 동행이 기뻤던 것일까 조만간 있을 형제들과의 조우에 들떴던 것일까 아니면, 산소를 통해서나마 어릴 적 여읜 부모님을 찾아뵙는 게 감격스러웠던 것일까, 쫄래쫄래 뒤따르는 마롱이도 아랑곳 않고 아버지는 앞으로 저 앞으로 껑충껑충 걸어가셨다.

잡초는 무성해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방아깨비, 여치, 메뚜기, 맹꽁이 같은 아이들이 폴짝거렸다. 아직 다른 일행은 아무도 도착해있지 않았다. 난 곧장 목장갑을 끼고 맨 위에서부터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친척들이 합류했고 그때마다 난 “오셨어요? 잘 지내셨죠?”하곤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물도 마시고 숨도 돌리며 쉬엄쉬엄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미소로 답하며 네 시간 가량을 허리를 펴지 않았다.

일찍 끝내고 집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는 삼촌, 숙모, 사촌동생들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불화가 있었다거나 그들이 내게 불쾌감을 준 일은 전혀 없다. 오히려 늘 부담스러울 정도로 살갑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래도 나는 어쩐지 그게 불편하다. 차라리 데면데면 모른척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다. 하지만 여전했다. 그들의 친절함도 나의 시원찮은 반응도.

이상한 노릇이다. 내 나이 벌써 서른넷, 사회생활은 제법 잘 해나가고 있고 초면인 이와도 어렵지 않게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편인데 가족들, 친척들을 대할 때는 굴을 파고 들어간 듯한 사회성 제로의 사춘기 시절 내가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걸까 아니면 노력을 안 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턱걸이를 하는 것만 같다. “안녕하세요?”에 턱걸이 한 개, “잘 지내셨죠?”에 턱걸이 한 개, “저는 잘 지냈습니다.” 대답에 또 턱걸이 한 개, 기를 쓰고 입꼬리를 올리는 건 턱걸이 두 개. 그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느낌. 발버둥을 쳐도 더는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 그리고 포기.

솔직히 안다. 노력을 안 하는 것이란 사실을. 그들 입장에서도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내가, 일절 먼저 다가오는 기색이 없는 내가 무어라고 그리 반갑겠는가. 그들은 관계를 위해서, 적어도 그 자리 그 순간을 위해 감정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일 테다. 두 다리를 팔딱팔딱하며 철봉을 오르고 있는 것일 테다. 그걸 알지만 참, 쉽지가 않다. 이것밖에 안되는 인간이라는 걸 번번이 깨닫기 때문에 더 가족 행사가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안다. 그게 맞다.

벌초를 마치고 차례를 올리고, 산소 앞에 자리를 깔고 식사를 했다. 작은 아버지가 식당을 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특별히 준비한 도시락이었다. 육개장도 명태조림도 나물무침도 고등어도 산적도 모두, 맛있었다. 내 옆에 앉아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그에게 간신히 “맛있네요” 인사를 했다. 정말 맛있었는데 조금 더 먹을 걸 그랬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도 고요했다. 운전에 집중한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어 다행이었을까. 다음엔 한 마디라도 더 할 수 있기를. 최소한 하나만 더, 속으로 외치며 철봉 위로 팔을 끌어당겨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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