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6.
서울이라는 길
서울역으로 회사를 다닌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넘었다. 그간 늘 동료들과 “을지로에 있을 때가 좋았지”하고 말을 나누었는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교통편도 주변 환경도 입주한 건물의 상태도 다 을지로 때가 나았다. 주변이 힙지로가 되는 바람에 얼결에 핫하고 힙한 공간들을 들락날락하고 퇴근 후 우르르 몰려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날도 많았는데, 지난 일 년 사이엔 그런 날은 손에 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하나는 밤이든 낮이든 서울로를 걷는 것이다.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한다기보다는 만리동으로 넘어갈 때 펼쳐지는 서울역 주변의 풍경을 흘긋거리며 걷는다. 간혹 서울스퀘어에 재미있는 조명이 떠오르거나 서울역 구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을 때 잠시 발길을 멈추는 정도다. 그리 오랜 시간을 투여하지 않아도 딱 이 정도만으로 제법 ‘서울’을 느낀 기분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디 가면 “저 서울 사람입니다”하면서 서울 토박이 행세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챈다. 꽤나 그럴듯한 표준어를 구사하는 부산인으로서 할 수 있는 적당히 유용한 농담이다.
반면에 스무 살부터 서울에 살게 된 건 진지하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다. 가장 중요한 선택들 중에서도 아마 가장 중요한 선택일 것이다. 인생의 분명한 반환점 혹은 전환점이랄까.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 가치 판단은 차치하고, 만약 고향을 떠나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매우 높은 확률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가지 않은 그 길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쉬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고향이 그리웠던 적은 거의 없다. 이게 진짜로 그립지 않아서 그립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애써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자에 가깝다고 믿는 편이지만, 이것 역시 나로서는 어떻게든 현재를 잘 살아나가야 하기에 그렇게 믿기로 마음먹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서울이 좋고, 가능한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고 싶다. 이십 대 중반쯤엔 인적 드문 일본의 시골 해변 마을로 도피하는 꿈도 종종 꿨었는데 이젠 전혀. 매일 매일 인파에 치이고 교통 체증에 질식할뻔하고 어이없는 물가에 고개를 떨궈도, 그래도 여기가 내 집이다. 내 연인과 내 가족과 내 친구와 내 동료와 함께 숨 쉬는 내 터전이다. 그러니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서울을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라고 한다. 새는 까치.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존재들이다. 이곳에 사는 동안 반가운 일이 더 더 많았으면 좋겠다. 분명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