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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Oct 20. 2020

#82. 날씨도 기분도 다 내 탓

2020.10.20.

날씨가 좋아 걸어서 출근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낯익은 풍경들이 낯설게 익숙한 모습들이 새롭게 보였다. 책가방을 메고 화사한 옷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상가 입구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들을 기다리는 모습. 아이들을 어린이집, 유치원 등원 차량에 태우고 떠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어른들의 모습. 햇살의 파편들이 외려 시야를 흐리게 해, 신비한 느낌마저 드는 풍경들.

여차하면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겠다 싶은 앙증맞은 스크럼을 짜고 걷는 아이들을 느긋한 걸음으로 뒤따랐다. 마스크 사이로 재잘재잘 목소리와 웃음 소리가 흘러나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궁금해 이어폰을 뺐지만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알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이 아침부터 무척 신나있구나, 정도. 날씨가 좋아서였을까?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니라, 날씨가 안 좋은 거야.

언제였더라, 나도 아직 아이였을 무렵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어린 꼬마가 무슨 근심이 그토록 많았던지, 시무룩 울상을 짓고 있으니 스치듯 건네신 말씀. “날씨는 감정이다”라는 말을 고대의 어떤 철학자와 한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후로 아주 먼 훗날의 일이지만, 당시에도 퍽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

날씨를 참 많이 탄다.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우중충하면 우중충한 대로, 날씨가 이리 당기면 이리 끌리고 저리 밀면 저리 밀리는 타입이랄까. 인간도 결국 커다란 세계의 일부이니 그게 자연스러운 듯도 하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거.

하지만 이 시간의 아이들은 늘 쾌활했는걸? 비가 오면 비에 웃고 눈이 오면 눈에 설레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껴안는 그들이었던걸? 그렇담 기분이 날씨 탓이 아니라 날씨가 기분 탓인 건 아닐까? 왜 그, <도깨비>의 명대사처럼.

태양으로 태어나기라도 한 듯 언제나 어디서나 밝고 명랑해 아꼈던 이에게도 괴로움이 있었던걸. 그는 그리 태어난 게 아니라 빛을 발하려 스스로를 태우고 있었던걸. 날씨 탓, 기분 탓 않고 상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걸. 나는 그걸 몰라줬던걸. 아니, 알면서 그냥 누렸던걸.

선생님, 뭐가 맞는 건가요? 기분이 날씨 탓인가요 날씨가 기분 탓인가요. 뭐긴 뭐야, 내 탓이지.

태양 같은 사람이 되고 싶네요. 사주어플에서는 저를 ‘하늘의 중천에 떠 있는 큰 태양’이라 묘사하던데, 잠재력은 있다 믿으면 될까요. 오늘도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정원으로 향합니다. 턱걸이를 하면서 나마 태양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볼까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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