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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Nov 09. 2020

#86. 물음표로 된 팔찌

2020.11.09.

지난주부터 작사를 배우고 있다. 위트앤시니컬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클래스를 발견하고 무턱대고 신청해버렸다. 덕분에 6주 동안 화요일마다 뮤지션 ‘생각의 여름’ 선생님 그리고 여섯 명의 수강생 동료들과 마주하게 됐다. 클래스의 이름은 ‘작사유치원’. 나이 서른넷에 유치원생이라니, 딱 좋다.

첫날의 주제는 ‘쓰는 곳을 생각하기, 시간에 올라타기’였다. 작사의 기본인 반복과 병렬에 대해 여러 사례들을 보며 배웠다. 기존의 곡에 구멍을 뚫어 각자가 자신만의 언어로 채우고 그걸 소리 내어 부르기도 했다. 수업이 종료될 즈음 공개된 오늘의 목표는 여섯째 날에 완성될 나의 곡을 위한 두 줄을 만드는 일이었다. 결국엔 여기서 하나도 남지 않아도 좋으니 일단은 시작해보자는 취지였다. 무엇을 소재로 할까, 골똘해질 무렵 손목으로 눈이 갔다.

팔찌를 좋아한다. 다른 액세서리는 물론 시계조차 차지 않는 미니멀리스트이지만 팔찌만큼은 예외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건 쉬이 발견하기 어려워서 근 몇 년은 민둥민둥했다. 그러다 최근에 왼 손목의 주인이 생겼는데, 여섯 살 조카가 미술 학원에서 직접 만든 비즈팔찌가 그 주인공이다.

눈썰미 좋은 몇몇 친구들은 “어 팔찌 되게 예쁘네” 칭찬했고 그때마다 나는 태연한 척 “아 이거, 조카가 만든 거”하고 별일 아닌 듯 답했다. 조카가 나를 위해 정성껏 만든 거라면 참 좋으련만, 사실은 어느 날 이게 내 화장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무심코 차 보았더니 사이즈가 맞았을 뿐이다. 조카의 작품이란 것도 뒤늦게 알았다. 조카가 내 손목을 보곤 “어 내 팔찌! 삼촌 내놔~!”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그리 떼쓰는 게 귀여워서 몇 차례 “아닌데 이거 삼촌이 만든 건데?” 골려주다가 “이거 너한텐 너무 크니까 삼촌이 할게, 대신 시크릿쥬쥬 요술봉 사줄게 어때?”하며 구슬렸다. 언제 울상이었냐는 듯 “알았어”하고 돌아서는 모양도 해사할만치 경쾌했다. 동시에 조금은 생경한 감정이 찾아오기도 했다. 내 첫 가사에 그것을 담고 싶었다.

귀엽고 애틋하고, 끝끝내 슬펐으면 좋겠다. 나의 마음이 꼭 그런 모양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카가 만든 팔찌를 발견하게 된 경위와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했던 갖은 회유와 설득, 그에 대한 조카의 반응 하나하나 모두 또렷하게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분명 다를 테다. 정성스레 만들었지만 바로 그날 저녁 팔찌가 없어진 줄도 몰랐던 것처럼, 나와의 시간도 금세 잃어버릴 것이다.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만 한다 믿지만, 상상만으로도 쓸쓸해지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영영 찾지 않을 줄 알면서도 다락방 한구석에서 손잡이만 바라보는 낡은 인형이 된 것만 같다. 남겨졌다는 느낌. 이전에도 느껴보았던가? 퍼뜩 떠오르지는 않는다.

어쩌면 부모됨이란 이 감각을 일상복처럼 입고 자식이 저 앞을 훨훨 날아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내 짐작이 맞는다면, 가끔은 너무도 아릴 것 같은데 어찌 견뎌내는 걸까. 나도 언젠가 부모가 될까, 잘 할 수 있을까, 잘 한다는 건 뭘까. 이런저런 물음표가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내가 이 감정과 상념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 첫날의 두 줄은 어떻게 변해갈까? 물음표가 느낌표가 될 때까지 해보는 수밖에.



얼마나 잡아당겼니 이걸로 줄넘기라도 한 거니, 네가 하고 다니다간 어제처럼 금방 잃어버릴걸, 그래서 내가 찬 거야
어찌나 좋아하던지 모두 다 어디서 났나 물어봐, 정작 너는 아까까지 없어진 줄도 몰랐었던걸, 그러니 내가 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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