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2.
아카시아꽃이 활짝 필 때까지 어느 성덕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필시 내가 아는 가장 성공한 덕후다. ‘사생팬’을 자처할 만치 흠모하던 이가 있었다. 그는 그를 만나기 위해 공연장을 방문했고 바로 그날 조촐한 뒤풀이를 함께한 계기로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만나기를 반복하다 보니 둘 사이엔 어느덧 꽤나 두터운 친분이 쌓여있었고, 자연스레 대화와 술잔을 주고받는 일도 잦아졌다. 일 년간 작업 공간을 공유하기도 했으며 서로를 형제라 칭하기도 스스럼이 없고, 급기야는 일박 이일로 단둘이 여행을 떠나기에 이르렀다. 덕질에 인생의 한 시기를 바친 입장에서 참으로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가장 성공한 어느 덕후, 바로 이원지다. 그를 인생의 승자로 만들어 준 스타는 바로, 나다.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팟캐스트를 통해 접한 나의 목소리와 사상에 감화되어 나를 찾아왔다. 2017년 여름, 김호 작가의 『맥주탐구생활』 출간을 기념한 공개방송. 조그마한 공간에서 오손도손 무대를 치르고 관객들과 어우러지는 자리였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 속에 그가 있었다. 원지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비주얼 쇼크’다. 뭐랄까, 좀 무서웠다. 부스스한 장발 헤어와 넝마 셔츠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붕어빵을 파는 푸드트러커라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몰골로 공연 내내 실실 쪼개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으니, 공포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있나. 하지만 지금은 그의 유니크한 스타일이 이따금은 부럽기도 하고, 본인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를 잘 알고 있는 멋쟁이로 리스펙트 한다. 스스로를 양조위 과(課)라 칭하는 과(過)만 범하지 않는다면. 원지는 내가 아는 가장 웃긴 존재이기도 하다. 재미있다기보다는 웃기다는 표현이 훨씬 적합하다. 두런두런 대화를 하다 보면 기기묘묘한 타이밍에 기상천외한 대답이 돌아와서 가끔은 머리통을 쪼개서 구조를 파악해보고픈 욕구가 치솟는다. 뚝배기를 깨고 싶다는 뜻은 결코 아니니 오해 없기를. 왜냐하면 자신의 말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일일이 눈치를 보며 살피는 모습도 퍽 귀엽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강릉 여행을 떠나게 된 건 그가 최근 중요한 결정을 내린 까닭이다.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했던 듯했다. 새로운 출발을 기념할 겸, 마침 연차도 써놓았겠다 여행은 일사천리로 시작되었다. 기차를 탔고 두부 푸딩을 먹었고 서점에 들러 이런저런 굿즈와 책 한 권을 샀다. 칼국수를 먹고 오래도록 해변을 걸었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3만 5천원을 내고 모텔에 체크인을 했고 잠깐 널부러졌고 장치찜을 먹었다.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맥주들을 마시다 잠들었다. 일출 직전에 깨서 해가 뜨는 걸 지켜봤고 컵라면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순두부찌개를 먹고 오죽헌을 방문한 뒤 서울로 돌아왔다. 그동안 사진을 여러 장 찍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언가 이원지스럽고, 이원지스러워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무튼 너는 앞으로도, 동구밭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필 때까지 이원지스럽게, 이원지처럼, 이원지로 살아가도록 하라. 응원한다. 너의 우상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