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Jae Shin Jan 18. 2021

#98. 쌓이고 쌓여 갈

2021.01.18.

내겐 두 명의 서태지가 있다. 첫 번째는 네 살 터울의 외사촌 형이다. 타고난 장사 체격으로 국민학교 입학 전부터 골목을 주름잡던 그는 중학교 땐 주먹 하나로 부산광역시 남구를 평정했다. 고교 시절엔 특공복 차림으로 폭주를 뛰며 전국을 누볐다. 전갈 자세로 광복절 전야를 배기음으로 뒤덮은 문제적 인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외갓집에 가는 게 최고로 좋았다. 아니 그러하겠는가, 서태지와 밤낮을 보낼 수 있는데. 그는 내게 조선통신사이기도 했다. 그의 방은 늘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코흘리개 때부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세기말 홍콩 영화, 버블 시대의 아니메 등 선진문물을 접했다. 컴퓨터가 보급된 이후론 동네 컴퓨터 가게에 없던 게임도 숱하게 경험했다.

한 번은 그와 노래방에 간 적이 있는데, 아마도 내가 중학교에 갓 입학한 즈음이었으리라. 고등학생이 된 그는 몇몇 친구들과 그야말로 칼군무를 추고 지누션 저리 가라 할 랩을 선보였다. 이전까지 선망의 대상이기만 했던 그였는데 당시엔 가슴속 어딘가가 부글부글했던 기억을 들여다보면, 아마 그 즈음이 내 사춘기의 시작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지금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교류 없이.

두 번째 서태지는 2014년 여름에 만났다. 대학교 강의실이었다. 그가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참여하게 되어 조우했는데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어깨를 살짝 넘는 장발에 빨간 뉴에라를 쓴 날티 풀풀 짝눈의 서울 사내. 가벼운 통성명 후 돌입한 두 시간 남짓의 녹음이 끝난 뒤엔 홀딱 빠져버려, 그 자리에서 바로 멤버로 영입해버리고야 말았다.

짐작했겠지만, 넥스트 서태지는 바로 제임스다. 내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와 있으면 어쩜 이리 대화가 끊이지 않는지 신기할 지경이고, 그에게서는 어찌 그리 이야깃거리가 마르지 않는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삶의 태도와 세계관 측면에서도 언제나 그를 보고 배운다. 그런 그는 최초의 서태지가 머물다 간 자리를 채워주다 못해 항상 과분한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큰 형도 만들어주었다. 존이다. 지금쯤 어디를 지나고 계실까, 태평양이려나 대서양이려나. 아무튼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곳을 그리고 있을 그는 제임스의 형이다. 그들 역시 대학교 강의실에서 처음 만났다. 제임스가 존의 실력에 반해 친근감을 표해 인연의 물꼬를 튼 것으로 안다. 그러고 보니 나와 제임스의 스토리와 유사한 구석이 있네, 신기하다.

미국에서 수 년을 지내다 잠시 한국에 들렀던 그가 오늘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다섯 달 가량 체류했는데 정말 ‘잠시’ 있다가 간 기분이다. 그래도 그가 최선을 다해 많은 시간을 내주어 여러 밤을 나누며 우애를 쌓을 수 있어 무척이나 기쁘다.

존은 깊고 넓다. 가만하다가도 출렁이고 어른스럽다가도 개구쟁이의 면모가 드러난다. 자신의 의견을 보태기 전에 끝까지 듣는 경청자이고 궁금한 건 뿌리의 뿌리까지 파헤치는 탐험가다. 제임스에게 형제애를 전파해 나에게까지 은총이 닿게 한 선지자이고, 곧 독수리 여권을 득할 인생의 승리자다. 무엇보다 나의 또 하나의 형제다.

하지만 존을 제3의 서태지라고 부르기엔 어쩐지 어색하다. 족보를 따지면 그가 서태지의 형이니 조용필로 불러보는 건 어떨까? 밀양에서 서울로 ‘화려한 도시를 꿈꾸며 찾아’와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하고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 떠나는. 우리의 영원한 형.

조용필도 서태지도 나도, 한동안 적잖이 적적(寂寂)할 것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매 순간 적잖은 우정이 쌓이고(積) 또 쌓여(積) 갈 것이다. 적, 적, 소리를 내면서.

건강하세요 형. 다음 번엔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97. 아내가 시무룩해 보이는 날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