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로 산 장난감 자동차를 들어 보이며 은호가 말한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것일까, 잘 가지고 놀아 줘서 나도 고마워, 답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곱씹을수록 감동이 차올랐달까. 이 얘기를 수민에게 전했더니 “그런 말 들으면 뭐든 다 사주고 싶겠다”하며 웃었다.
이처럼 언제 이렇게 자랐나, 놀라움을 선사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은호는 주로 말을 통해서 우리를 일깨운다, 여러모로. 고맙단 인사처럼 감정을 일깨우기도 하고, 철두철미한 논리 구조를 내세워 머리를 쓰게 만들기도 하고, 상상 혹은 거짓말 또는 둘 다로 가슴속 깊이 묻혀 있던 동심의 고개를 빼꼼히 내밀게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자주 웃고, 때때로 기가 차고, 늘 뭉클하다.
은율이는 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명료하게, 목적을 담아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 ‘엄마’. 나머지는 단어라기보단 소리에 가깝고, 그래서 은율이는 아직 말보다 몸이 앞선다. 둘째의 생존방식인 것인지 타고난 것인지 아님 둘 다인지, 은율이는 거침이 없다. 원하는 게 있으면, 특히 먹을 것, 어른 둘이 붙잡아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오직 직진이다. 안기려고 달려올 때, 싫다고 몸부림 칠 때, 신나서 다이빙할 때 등등 매사 저돌 모드다.
요즘 내 가장 큰 취미는 은호, 은율 둘이서 교류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일이다. 장난감 쟁탈전을 제외하면, 대부분 은호를 보고 은율이가 깔깔 웃는 게 전부다. 형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은율이에겐 새롭고 신선한 엔터테인먼트인가 보다. 자신을 보며 웃는 은율이에 또 은호는 반응한다. 어떻게든 더 웃겨 주려고 같은 말짓과 몸짓을 반복한다. 형 노릇이 퍽 기꺼운 모양이다.
은율이가 생겼을 때는 은호에게 미안했다. 더 보살펴주지 못해서. 은율이가 태어나고 얼마간은 은율이에게 미안했다. 은호에게 쏟는 만큼의 애정을 주지 못해서. 언젠가부터는 다시 은호에게 미안했다. 어린 너에게 벌써부터 인내를, 양보를 바라서. 요샌 매일매일 미안함이 시소를 탄다.
그래도 그 시소가 무너지지 않게 중심을 꽉 잡아주는 건 ‘다행’이란 안도다. 누나 하나 있는 나에게도, 외동인 수민에게도 형제의 삶이란 전혀 다른 우주의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되었든 우리가 서로에게 평생의 친구를 안겨주었다는 안도.
너무 이른 감상인 것도 같지만, 둘을 지켜보노라면 <우주형제>가 떠오른다. 생김도 성정도 둘의 관계도 왠지 뭇타와 히비토를 닮았다는 기시감. 우주비행사는 바라지 않으니 그들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기를.
언젠가 만화방에서 셋이 함께 <우주형제> 1권의 표지를 펼칠 날을 기다리며, 아빠가.
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