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도 옷을 갈아입네

후지산 여행기, 하나

by SeungJae Shin

후지산 근처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딱 열 걸음만 나가면 저만치에 우뚝 솟은 후지산이 보인다. 여태껏 후지산의 눈 쌓인 모습만을 봐왔던 터라 처음에는 저 산이 그 산인 줄 몰랐다. 짐을 풀고 자전거를 빌려 가장 아름다운 후지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가와구치호로 달려갔는데, 아무리 호수 주변을 빙빙 돌아도 상상 속의 그림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나가던 청년에게 물으니 빙그레 웃으며 여름에는 후지산도 하복으로 갈아입는다고 하더라. 만년설이 아니었구나.


구름을 허리춤에 잔뜩 두른 후지산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슬그머니 뒤따라 나오는 감탄. 이런 속물같은 놈. 한국에서 자주 봤던 산맥의 실루엣과는 전혀 다르게 후지산은 홀로 고고했다. 다람쥐들 사이 고개를 빳빳이 치켜든 한 마리 기린처럼. 기대를 배반당한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제법 오래도록 경치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다. 호수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이지, 왜 그리도 일본인들이 후지산을 신성시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내일은 도쿄를 스치듯 안녕하고 이 지역으로 온 진짜 이유, 후지큐 하이랜드로 간다. 아침 8시 30분 개장이니 늦어도 8시까지는 가서 절규우선권 구입을 위한 줄을 설 작정이다. 4대 절규머신의 우선권을 한 장씩 모조리 사서 요긴하게 써먹을 테다. 대기 없이 단 한 차례 놀이기구에 오르기 위한 티켓이 천 엔이니 꽤나 비싸긴 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안 살 순 없지.


이전의 나였더라도 흔쾌히 이 금액을 지불할 수 있었을까. 언젠가부터, 어림잡아 월급을 받으면서부터 돈으로 시간과 체력을 사는 일에 익숙해졌다. 합리적인 투자로 생각하게 되었달까. 예전엔 택시 타는 걸 과장 좀 보태서 돈지랄로 여겼었는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이미 ‘택시병’에 걸려버렸을 거야.


이와 별개로 종종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해 깨우치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부모님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나 친구의 사진엽서와 음반을 넉넉히 구입할 때, 축의금으로 꽤 많은 액수를 책정했을 때, 경비원 아저씨께 두유와 단팥빵을 건넸을 때. 그럴 때마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있어 참 다행이라 깨달을 수 있어 기쁘다. 월급봉투를 15번쯤 받았음에도 통장 잔고는 바닥이지만 뭐 어떤가. 또 벌면 그만인 것을.


도리도리, 이제 진짜 저축해야지. 절규 우선권을 양보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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