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Writing Photo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Jae Shin Apr 07. 2017

그날의 파란 하늘

Writing Photo, 16

아침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나날들이 있었다. 분명 오늘도 신나는 일들이 가득한,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하루일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그런 시절 말이다. 당시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까지의 몇 분이 가장 따분했다. 어쩌면 그래서 항상 재빨리 꿈나라행 열차를 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이외에는 하품할 틈조차 없었으니까. 저녁 늦게 귀가하는 주인을 먼 발치에서 발견하고 달려오는 강아지처럼, 매 찰나를 전심전력을 다해 살아내던 백 퍼센트의 시간들. 지금도 그날의 파란 하늘을 떠올리면 두둥실, 구름 위를 걷고는 한다.


매일매일 반창고로 몸 구석구석을 도배하던, 스케이트보드가 삶의 전부였던 나날들이 있었다. 믿고 따르던 동네 형이 이사를 가며 물려준, 해질 대로 해졌지만 해가 질 때까지 체중을 실어도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던 빛바랜 민트색 보드. 구르고 찧고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해도 가끔씩 느껴지던 녀석과의 일체감과 속도감이 언제나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한 후, 지쳐 자빠진 자리에 그대로 널브러져 가쁜 숨을 가다듬던, 내뱉는 호흡마다 옅은 웃음이 섞여 나오던 시간들. 지금도 그날의 파란 하늘을 떠올리면 귓가에 바람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명을 지속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찾지 못한 채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깊이를 가늠할 길 없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은 원래 무채색'이라 설득하는 것밖에 없었던.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교실을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아, 그저 발걸음을 옮기기에 급급했었다.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나를 향해 보내오던 모든 관심이 너무도 아파 오직 고독만을 벗 삼던 시간들. 지금도 그날의 파란 하늘을 떠올리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벤치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너를 기다리던 나날들이 있었다. 이따금 저 너머에서 지나가는 기차가 눈에 띄면,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를 상기하며 ‘저건 몹시 거대한 구렁이나 지렁이일지도 몰라’하며 혼자 킥킥대곤 했다. 그러다 익숙한 너의 뜀박질 소리가 들리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더랬지. 해를 가리고 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건네던 너의 첫 마디. “오래 기다렸어?” 번지는 미소를 감추려 애써도 잘 되지 않아 당황스럽던 시간들. 지금도 그날의 파란 하늘을 떠올리면 입술이 씰룩, 씰룩.


소중한 것은 소중하다 여기는 이가 소중히 대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던, 심장에 뚫린 구멍을 미련스럽게도 손으로 막아보려 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사소한 기척에 흠칫 뒤를 돌아보고 후회하기를 거듭하는 자신이 밉고도 미워 절레절레, 고개만 주억거렸었다. 눈치 없이 파란 하늘마저 원망스러워 미친 사람 마냥 허공에 신경질을 내고 고함을 치던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날의 파란 하늘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내 이마를 톡 때리며 빙그레, 하게 된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들, 그리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행복했던 보통의 나날들도 있었다. 생의 온도와는 관계없이 늘 한결같던 풍경이 있었다. 한 뼘만 시선을 위로 올리면 동공이 초점을 잃을 만큼 새파란 하늘을 간직한, 그런.


지금도 선명한 그날의 파란 하늘이, 점점 좁아져 간다. 점점 사라져 간다. 점점 스러져 간다. 그날의 파란 하늘이, 점점 어두워져만 간다. 내 추억도 그렇게, 흐려져만 간다.


Writing. by 승재


Writing Photo, 16. @J임스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어디라도 좋다. 그럼에도 여행을 하면서, 유난스러운 곳이 있다. 마카오의 펜하 성당(Chapel of Our Lady of Penha)이 꼭 그렇다. 골목길로 이어진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오르고서야 나타나는 마카오의 전경에 그 성취감이 있으며, 세나도 광장(Senado Square) 일대의 중심 관광지에서 홀로 떨어져 있음에 그 한적함이 있다. 느지막한 오후, 후덥고 습한 도시의 언덕 위에 올라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혼돈과 질서가 모호하게 공존하는 세계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Photo. by 임스 


승재가 쓰고,

임스가 담다.


함께 서로 쓰.담.는 중.

매거진의 이전글 Writing Photo, B컷의 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