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주의보가 흘러나오던 여름밤
“집이야?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음… 난 치즈버거랑 밀크셰이크.”
이따금 이른 귀가를 할 때면 민정은 정연에게 전화를 걸고는 한다. 정연은 이 전화에 세 번 중 한 번은 같은 메뉴를 이야기한다. 이는 오직 정연만이 알고 있는 일종의 악취미 같은 것이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레스트리스>에서 애나벨은 에녹에게 곧 다가올 자신의 장례식 음식으로 치즈버거와 밀크셰이크를 준비해달라고 말하는데, 이 장난은 여기서 비롯됐다.
정연이 민정을 처음 본 곳은 은주의 장례식에서였다. 정확한 위치는 가물가물하지만 중앙에 우뚝 솟은 나무가 인상적인 넓은 정원을 가진 저택이었다. 당시 정연은 일곱 살이었는데, 한 사람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늠하기에는 어려운 나이였지만 늘 유쾌하던 엄마가 유난히도 침울해 있어 덩달아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정연아, 은주가 죽었어.”
정연의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따라 울음을 터뜨린 정연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은주가 죽었다고. 언니가 죽었다고. 엄마에게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정연은 ‘그러면 그 사람이 내 이모인 거야?’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무언가 질문하려다 멈추고 미루어 짐작하는 정연의 습관은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은주의 책상에 앉아 멍하니 창밖 어딘가를 응시하는 엄마를 두고 정연은 정원으로 나왔다. 해가 쨍쨍한데도 조금씩 비가 내리는 신기한 날씨였다. 손등에 떨어진 빗방울이 반짝거리는 것을 구경하며 나무 그늘 아래로 향했다. 그곳에 민정이 있었다. 새까만 정장을 차려 입고 아주 짧은 갈색 머리를 한, 상기할수록 애나벨과 똑 닮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스물세 살의 민정이었다.
“네가 수현이 이모 딸이구나. 처음 보네, 안녕?”
만지작거리던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케이스에 집어넣으며 민정이 말했다. 복장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환한 미소, 쾌활한 목소리였다. 정연은 고개를 한 번 끄덕, 하고 나무를 올려다봤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드문드문 들려오는 빗소리가 파도가 백사장을 훑는 소리와 비슷하다 느끼며 눈을 깜빡거리는데, 민정이 말을 이었다.
“이런 비를 여우비라고 해. 맑은 날에 잠깐 내리는 비.”
여우를 사랑한 구름이 여우가 시집가는 게 슬퍼 우는 거라는 둥, 어떤 지역에서는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둥, 사실은 높은 곳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 빗방울이 맑은 곳까지 날아오는 것이라는 둥, 대꾸 없는 정연은 괘념치 않고 민정은 계속 중얼거렸다. 그녀의 혼잣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정연은 민정이 잠시 말을 멈춘 사이 자리를 떴다. 민정이 점점 울 것 같은 목소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쾅쾅 소리가 들렸다. 먹을 것을 사 들고 올 때면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고 부러 문을 두드리는 민정이었다. 아마 그녀의 손에는 치즈버거와 밀크셰이크가 들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한 또 다른 음식이 나머지 한 손에 들려 있을 것이다. 문을 열기 위해 현관으로 향하는 정연의 머릿속에 문득 그녀와의 첫 만남이 스쳤다. 정연은 생각했다.
‘왔네, 여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