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바람을 입은 새

쓰나미 주의보가 흘러나오던 여름밤

by SeungJae Shin

“아악!”


익숙한 비명에 정연은 눈을 떴다. 단말마에 이어 달그락달그락, 쏴- 소리까지 마무리가 될 즈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게 만드는 탄 냄새와 그 속에 숨겨진 아주 옅은 커피 향, 그리고 허둥대며 사태를 수습하고 있는 뒷모습까지. 민정과 동거를 시작한 지 단 3개월 만에 벌써 낯에 익어버린 아침 풍경이었다.


“일어났구나, 잘 잤어?”


“응. 또?”


“머리 말리느라 불 끌 타이밍을 놓쳤어, 젠장. 냄새 많이 나니?”


“뭐, 그럭저럭 참을만해. 근데 이러다가 언젠가 불에 타 죽는 거 아냐?”


“인덕션이니까 너무 걱정 마. 주변은 또 대리석이기도 하고, 스프링클러도 있고.”


정연은 당장이라도 휴대전화를 열고 ‘인덕션 화재’를 검색해 결과를 보여주고픈 충동이 일었지만 가벼운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일일이 대응하다간 끝이 없을 테니까. 정연은 우회로가 있는데 굳이 늪에 발을 디디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바쁘면 어서 출근해, 내가 수습할 테니까.”


“부탁할게, 아침부터 미팅이 있거든. 미안, 고마워.”


입에 털어 넣은 빵을 오물거리며 볼에 뽀뽀를 하려는 민정을 왼손을 쭉 뻗어 가까스로 제지한 정연은 식탁 위에 놓인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고 거실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인상을 찌푸리지 않아도 눈을 뜰 수 있는 따가워지기 전의 햇살과 서늘한 아침 공기,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새들의 지저귐에 둘러싸이는, 정연이 하루 중 가장 사랑하는 순간.


누구도 입수한 적이 없는 새벽의 레인으로 다이빙을 하듯, 감상에 잠길만하면 불쑥 풍경 속으로 들어오는 민정을 바라보는 것도 그 순간의 일부가 됐다. 가까이서 지켜보면 늘 시간에 쫓겨 허둥대는 것 같은 민정이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본 그녀는 썩 멋진 사람이었다.


민정은 제법 이름이 있는 출판사의 편집자인데, 최근에는 기성 작가 섭외나 신인 발굴, 출판 및 행사 기획, 책 디자인 등 본인이 거의 모든 것을 주도할 수 있는 독립적인 레이블까지 맡게 됐다. 스스로가 인기 있는 몇몇 잡지와 신문 지면에 칼럼을 연재하며 나름의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했다. 정연이 부러 그녀의 글을 찾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내색한 적도 없고 향후에도 그럴 계획은 없지만, 정연은 이렇게 자신과는 달리 항상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민정이 보기 좋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태워 먹는 모카포트를 군말 없이 치워주는 것도 그녀에 대한 호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다. 선물 받은 네스프레소 머신이 있는데도 모카포트를 고집하는 것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특히 정연은 민정의 옷차림이 좋았다. 언젠가 보았던 이치카와 준 감독의 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대사를 무심결에 중얼거리게 할 만큼.


“그녀는 하늘을 나는 새가 바람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옷을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