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주의보가 흘러나오던 여름밤
은호가 몰래 읽고 있었던 것은 며칠 전 하나미치에서 구입한 노다 사토루의 만화 <골든 카무이>였다.
“그건 무조건 봐야지, 미쳐.”
항상 어딘지 여지를 주는 듯한 말투를 고수하던 서진이 눈을 반짝이며 저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은호는 선뜻 지갑을 털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 이름에 그림체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지만. 아주 이따금씩 볼 수 있는 서진의 단호함에는 무언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
은호는 교과서 뒤로 만화책을 감추고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서진에 대한 믿음이 한 겹 한 겹 쌓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골든 카무이>가 1권부터 정말, 미칠 듯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봐 왔던 모든 작품들 중에서 ‘재미’ 측면에서는 꼭대기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도대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만화였다. 기본 골격은 서부극인 것 같은데 배경은 홋카이도이고, 홋카이도의 선주민 요리와 의복을 비롯한 아이누족의 전통문화가 총망라되어있고, 긴장감이 떨어질만하면 B급 유머를 터뜨려 완급을 조절했다. 웬만하면 감정의 동요가 없는 은호이지만 만화 앞에서만큼은 언제나 무장해제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 은호는 사실 ‘만화소년’이었던 것이다.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아기공룡 둘리>를 달달 외우고 다녔고, 일곱 살 무렵 우연히 동네 문방구에서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을 접한 뒤로는 일본 만화의 세계에 푹 빠져 살았다. 문학소년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구태여 부정하지 않은 이유에는 은호 스스로가 ‘만화도 문학에 당연히 포함되니까’라고 믿었던 탓도 있다.
이처럼 만화라는 매체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그것을 애호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은호였지만, 정연의 느닷없는 질문에는 답변을 주춤거렸다.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과연 있는 그대로를 고해도 괜찮을지,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인데 대충 얼버무리고 넘기는 게 더 편하지 않을지 고민했다.
“응? 뭐가”
정연이의 물음에 은호는 짐짓 태연한 척 답했다. 하지만 자신이 속으로는 정연이의 눈치를 살피고 있음을 체감했다. 미어캣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좀 전에 수업시간에 보던 거 뭐였냐고. 혼자 엄청 웃더만.”
일말의 주저함 없이 되묻는 정연이 어쩐지 만화 캐릭터 같다는 생각을 은호는 잠시 했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아, 이거? <골든 카무이>라는 만화야. 나도 오늘 처음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 그래서 빵 터졌지. 혹시 알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 나 잠깐 봐도 되냐?”
정연이는 은호가 미처 고개를 다 끄덕이기도 전에 덥석 책을 집어갔다. 정연이의 행동에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기에, 은호도 익숙한 듯이 정연에게 책을 넘겼다.
“오, 홋카이도가 배경이네. 재밌겠다. 나 좀 봐도 될까?”
“그래, 깨끗하게 보고 돌려주라.”
“어, 오늘 점심때 보고 바로 줄게 걱정 마, 안 훔쳐 가니까.”
정연이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기 자리로 향했다. 은호는 정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두세 걸음을 걷던 정연이 다시 갑자기 몸을 홱 돌렸다. 그러고는 은호를 보며 말했다.
“하나미치 도장 찍혀있네? 이거 거기서 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