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주의보가 흘러나오던 여름밤
정연이가 남들보다 빨랐던 것은 말뿐만이 아니었다. 달리기도 압도적으로 빨랐다. 쭉쭉 뻗은 긴 다리를 타고나기도 했거니와 키도 늘 반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컸다. 초등학생 때는 체육 선생님의 끈질긴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육상부에 몸을 담기도 했다. 그는 운동회 학년별 릴레이에서 반 바퀴 차이를 따라잡던 정연이에게 “사바나 초원에서 덤벼드는 호랑이를 유유히 따돌리는 타조 같다”라고 칭찬하며 애걸복걸하다시피 했다.
달리기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연이는 육상부 생활을 두 달여 만에 그만두었다. 담당 교사, 그러니까 그 체육 선생님이 학원물에서나 나올 법한 열혈에 초긍정맨이었는데, 정연이는 그가 인간적으로 거북하진 않았지만 체질적으로 그 분위기가 자신과는 맞지 않다 느꼈던 탓이다. 정연이는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호랑이는 아프리카에 살지 않는다' 말할까 하다가 말았다. 어찌 됐든 날렵한 치타나 표범보다는 호랑이가 그와 더 어울리는 것 같았기에.
언제부턴가 정연이는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쏟는 것이 스스로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2008년 황금기가 도래하기 전의 스페인 국가대표 축구팀 같달까. 종료 휘슬이 울리기까지 15분여가 남았고 동점인 상황에서 유유히 패스를 돌리는, ‘뭘 그리 악다구니를 써가며 이기려 들어, 이만하면 됐지 뭐’라는 태도를 가진. 삶에 대한 의욕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넘치지도 않는, 따지자면 약간 모자란 쪽에 가까운, 그게 정연이였다.
그래서 정연이에게는 <워터보이즈>나 <스윙걸즈> 그리고는 <땐뽀걸즈>와 같은 영화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그렇게 빛나 보일 수 없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 대에 청춘을 바쳐 열중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 순수하게 어떤 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부러웠다.
별 관심은 없었지만 마주칠 때면 항상 무표정으로 되지도 않는 똥폼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은호에게 정연이가 대뜸 말을 걸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은호 입장에서는 도도한 척하던 고양이가 점프에 실패해 나자빠지는 모양새였지만, 정연이가 알 바는 아니니까. 정연이는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가려는 듯 보였던 은호를 붙잡고 물었다.
“야, 뭐가 그렇게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