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네마 키드

쓰나미 주의보가 흘러나오던 여름밤

by SeungJae Shin

정연이는 또래에 비해 무엇이든 빠른 아이였다. 그녀의 부모에게 전해 들은 말이기에 과장이 섞였을 수 있지만, 어쨌든 정연이는 돌이 채 되기 전에 말을 시작했다.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매뉴얼에 따라 잘 조립한 레고처럼 주어와 목적어, 동사가 정확하게 제자리를 찾아 있는 문장들을 시종일관 중얼거렸다. 자연스레 글도 빨리 깨쳐서, 서너 살 무렵부터는 길을 걸을 때면 온갖 간판들을 읽느라 십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도 한 시간은 너끈히 넘겨버렸다.


정연이의 부모는 둘 다 틈만 나면 집에서 영화를 봤는데, 정연이가 옆에 앉아 자막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본 뒤로는 한국영화를 볼 때도 어떻게든 파일을 구해 자막을 띄워 놓았었다. 딱히 교육 차원에서 했던 행동은 아니었다. 정연이가 뜻도 모르는 대사를, 이를테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와 같은,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정연이의 대사에서 ‘이 아이가 영화의 뉘앙스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구나’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관람은 정연이가 청소년이 되고 또 부모들이 각자의 일로 바빠지기 전까지 이어졌다. 물론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굳이 한국영화에 자막을 띄우고 그것들을 정연이가 줄줄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일을 지속했다는 말이다. 저마다의 해석으로 갑론을박을 벌이는 두 사람과 정연이 사이에는 분명 온도차가 있었지만.


사실 정연이는 그녀의 부모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집에는 항상 블루레이 디스크들이 있었고, 학원을 다니지 않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영화를 보면서 하루를 넘기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으니 정연이는 늘 영화를 봤다. 집중할 때도 있었고 화면 앞에서 멍하니 있을 때도 있었고, 보다 말다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주 가끔은 대사를 따라 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정연이가 읊조린 대사는 리들리 스콧의 <마션>의 첫 대사다.


“I’m pretty much fucked.”


I’m pretty much fucked, I’m pretty much fucked, I’m pretty much fucked.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정연이는 계속 되뇌었다. 발목에다 이 문장으로 레터링을 하면 어떨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