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은호의 방

쓰나미 주의보가 흘러나오던 여름밤

by SeungJae Shin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쓰거나 패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은호였지만 인테리어에는 제법 흥미를 느끼는 편이었다. 이따금 바깥에서 독특한 생김새의 가구를 맞닥뜨리거나 ‘무언가 절묘하다’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감각적으로 배치된 공간에 진입하면, 낚시터의 구경꾼처럼 넋을 놓고 한참을 그것/그곳을 들여다보고는 했다. 하지만 타고난 센스는 조금 부족한 쪽에 가까워서, 나름대로 애써가며 이래저래 방을 꾸며봐도 늘 어딘가 불만족스러웠다.


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청소를 하는 부모의 성정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청결에 집착하는 그들은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이기도 해서 은호는 여태껏 집 벽에 액자 하나 걸려있는 모습을 본 역사가 없다. 이렇듯 보고 배운 것이 치우는 일 뿐이니 채우는 일에는 젬병일 수밖에.


그나마 은호의 방에서 스스로를 흐뭇하게 만드는 곳이 있다면 책들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키 순서로 꽂혀 있는 책장일 것이다. 영재교육 덕분에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재주는 부족해도 정리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는 은호였다. 또한 그는 책은 질서 정연하게 가지런히 놓여 있을 때 가장 근사하다고 믿었다. 무엇보다 용돈을 아껴가며 하나하나 모아온 자신의 컬렉션을 사랑했다.


먼 미래에 대해서는 그다지 상상하는 일이 없는 은호이지만, 매우 구체적인 버킷리스트는 하나 있다. 이른 세 살이 될 때까지 좋아하는 작품을 딱 300편을 추려 커다란 책장에 몽땅 진열한 뒤에 죽을 때까지 그것들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왜 이른 세 살인고 하면 어릴 적 자신을 키워준 외할머니가 그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300이라는 숫자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거니 하고 은호가 짐작했을 뿐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책장 앞에 서서 다음 날 학교에 가져갈 책을 고르는 일은 은호의 중요한 루틴 중 하나다. 은호는 따분한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그만의 독서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을 즐겼던 까닭이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은호는 교과서 뒤에 몰래 책을 숨긴 채로 읽고 있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양손으로 간신히 입을 틀어막고 끅끅대고 있는데 우측 뒤편 45도 방향에서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부메랑에 몸을 날리는 보더콜리라도 된 듯 고개를 돌려버린 은호는 여태까지 그 누구에도 보여준 적이 없는, 적어도 학교에서는, 폭소로 가득한 얼굴을 들키게 되었다. 눈꼬리가 조금은 처진, 눈동자가 무척이나 까맣고 큰, 표정에서 권태로움이 묻어나는 정연과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