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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Sep 05. 2019

#6. 인생은 Not, Simple

2019.09.05.

퇴근하고 영어회화 스터디 모임에 나갔다. 이상한 우연으로, 회사에서 친분이 있던 동료가 동일한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함께 일호선 전철에 몸을 맡겼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떡볶이와 순대를 먹으며 시간을 보낸 뒤 모임 장소로 향했다. 추적추적 오는 비를 벗 삼으면서.


첫 방문을 물리적으로 동행한 것은 거시적인 의미로 한솥밥을 먹고 있는 Jinny였지만, 이 자리를 알게 되고 참석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끔 만든 것은 내 형제인 James다. 영어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동시에 현상 유지를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세계여행에서 돌아온 뒤로 이렇게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을 부러 찾아다니는 그였다.


참가의사를 밝힌 멤버들을 4인 1조로 묶는 것이 본 스터디의 원칙인데, 공교롭게도 또한 다행스럽게도 난 James 형과 한 조가 되어 무사히 두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금일의 정기 세션이 마무리된 후 모두가 참여하는 단체 회식 대신 우리는 둘만의 시간을 택했고, 행선지를 고민하던 찰나에 형이 이례적으로 먼저 목적지를 제안했다. 예전부터 나를 꼭 데려가고 싶었다는 바(Bar)가 있었다며.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그럴듯한 바(Bar) 아니라 당장이라도 무너질듯한 허름한 가맥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해도 그에겐 분명히 의도한 바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그는 늘 나를 어떤 식으로든 놀라게 하고, 내가 경험 또는 인지해보지 못한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인정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오늘 그가 나를 인도한 낫심플(Not Simple)은 과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공간의 분위기부터 바텐더님들의 태도, 마스터의 통찰력까지 모든 것이 훌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며칠 전의 일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James와 함께 최초로 코인노래방을 방문했던 날, 그날의 일이.


그는 간주점프를 하지 않았다. 노래방 기계에 지폐를 욱여넣은 후 나는 다섯 자리 숫자를 입력하고, 얼른 가사를 입 밖으로 내기 위해 간주점프를 눌렀다. 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행해온 너무나도 당연한 행위였다. 그런 나를 보고 그는 말했다. “털보가 간주점프를 하다니, 놀라운걸.”


“아, 형은 간점 안 하세요? 그럼 저도 안 해도 괜찮아요!”


과연, 간점을 하지 않을 때에 비로소 보이는 세상이 있었다. 비록 조악한 노래방 반주에 불과할지라도 온전히 한 곡을 즐기게 된 것, 내가 아닌 타인이 마이크를 쥘 때 당신에게 더욱 집중하게 된 것, 그리고 노래방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색을 하게 된 것. 그게 깊든 얕든, 가치 있든 없든.


James가 밴드 생활도 오래 하고 음악을 직업으로 삼으려고 준비했던 기간을 보내왔음을 알았기에, 처음 그가 간주점프를 하지 않는 종류의 인간임을 알았을 땐 그것이 단순히 음악에 대한 존중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내 결론은 조금 다른 궤적을 그린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그를 곁에 둔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그는 그가 맞닿는 세상 그리고 타인을 결코 함부로 간주하거나 중간을 생략하고 과정을 점프해서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목소리를 낼 여지가 없는 사이에도 그 행간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자세를 유지했다. 자신을 쉬이 이런 존재일 거라 간주하고, 마음대로 점프해서 자신을 정의 내리는 무리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는 그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득의양양하게 회고하는 나이지만, 나 역시 그와 마주한 첫 순간에는 그가 그저 남들과는 좀 다르고 특이한 신인류라고만 여겼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편하기 위해 그를 그저 ‘삶의 천재’로 추켜 세우기에 급급했다. 알고 보니 그가 그토록 짧은 시간에 숱한 경험들을 한 지도 모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나를 형제로 여겨주었다. 언젠가 그와 내가 서로를 진심으로 인정할 날이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 주었다. 단순하지 않은(Not Simple) 세상이지만 무대포와 같은 우직함으로 나를 신뢰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형제가 되었다.


단순하지 않은 게임의 룰을 극복하는 단 하나의 비책은 그보다 더 단순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새벽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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