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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취와 자만이 일어나는 과정 관찰하기 - 1

'나'와 '내 것'에 대한 매혹

by 이정표
3, 4화에서는 도취 자체의 느낌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도취와 자만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그 과정을 묘사해보려 합니다.
혹시 내용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첨부된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2. 도취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이제 도취가 일어나는 상황과 방식, 대상 등을 구체화해 보기로 하자.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도취가 일어나는 전형적 상황부터 검토한 뒤, 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도취가 일어나는 상황들로 점차 범위를 넓혀 나가다 보면 도취란 과정의 전체 윤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도취가 일어나는 가장 전형적이고 일반적 상황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나’와 ‘내 것’에 대한 매혹


일단 도취라 불리는 이 현상은 기본적으로 오랜 노력을 통해 성취한 결실을 향유하는 상황에서 가장 빈번히 목격된다. 뛰어난 자질을 획득하거나, 우수한 집단 소속되거나, 탁월한 성과 달성한 개인이 그 성과에 스스로 매혹되어 자아를 부풀리는 경우가 바로 여기 해당된다. 이런 성과들은 자력으로 획득자아상징인 만큼 주체 자신과 밀접히 연관되며, 따라서 도취의 대상으로 오용되기도 쉽다.


그렇다면 도취가 일어나는 이 과정은 구체적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아마도 성취의 순간에 받은 찬사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도취가 일어나는 경우부터 들여다보면, 도취 과정에 작용하는 요인들을 식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찬사가 일어나는 상황을 한번 떠올려보기로 하자. 이런 상황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 개인을 에워싼 채 그가 이룩한 성취를 대상으로 찬사를 보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들은 그의 성취를 함께 기뻐하면서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곤 한다.


비록 이런 찬사 역시 지나치게 반복되거나 눈먼 예찬의 형태로 변형될 경우 도취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평범한 축하 행위 그 자체만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는 오직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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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사자가 이 기억을 머릿속에서 반복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찬사를 받는 상황에 대한 기억은 그 자체만으로도 도취를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기억 속에 등장하는 그 군중이 더 이상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군중은 일종의 자의식적 관심, 즉 당사자 자신의 정신력으로 재생산해낸 그 자신의 정신 요소에 불과하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찬사 받은 그 기억을 되풀이한다면 그는 자신의 관심을 자신의 자아상징 위에 쏟아부으며 그것을 부풀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관심의 흐름은 도취에 특징적인 것으로, 본성상 자기 예찬, 혹은 자기 높임의 성질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는 사실 찬사 경험이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즉, 당사자가 자아상에 저장된 자아상징을 끄집어내 매혹적 관심으로 충전시킨 뒤 다시 집어삼키기만 해도, 그는 즉시 찬사 기억을 되풀이했을 때와 다름없는 도취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다. 성취 자체의 기억, 즉 주변 인물이 배제된 자아상징의 기억만으로도 도취가 촉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전적으로 매혹적 관심의 특성 덕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매혹적 관심이란 대상을 향해 정신을 놓아버릴 때 촉발되는 맹목적 관심으로, 매혹 대상을 향해 빨려 들어가며 그 대상을 쾌감으로 충전시키는 식으로 작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관심은 위에서 말한 자의식적 관심과 방향성, 구조, 본성 등이 사실상 완전히 일치한다.



background-7520117_1280.jpg 매혹적 관심은 결국 자기 높임, 자기 예찬의 성질을 띠게 된다.(출처: pixabay)



실제로, 매혹 대상을 향해 쏟아지는 관심의 흐름에 상상적 구성 능력을 지닌 의식을 첨부해 본다면, 그 관심은 찬사 기억 속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모호한 인격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성취를 기억 속에서 단순히 되풀이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거나 예찬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건 사실 바로 이 같은 사정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도취를 일으키는 당사자가 마치 자아상으로 흡수해 들인 자아상징을 다시 끄집어내 거울에다 비춰보듯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력으로 획득한 성과나 업적, 자질 등은 그것이 자아의 정신적 ‘먹잇감’에 해당되는 자아상징인 한 이처럼 일정 부분 대상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자아상징은 어쨌든 당사자와 밀착해 있는 만큼 주로 ‘나’ 관념과 연관되며, 따라서 그것을 중심으로 도취가 일어날 때도 그 과정의 도취적 성질을 인식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그렇지만 이 도취가 ‘내 것’이라는 관념을 통해 우회적으로 발생할 때는 그 과정의 본성을 파악하기가 좀 더 어려워진다. 수준 높은 문화예술 작품이나, 사치품, 그리고 뛰어난 사람과 맺은 관계, 즉 인맥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의식을 팽창시키는 경우가 바로 여기 해당된다.


주로 관계 형성 능력에 기반을 둔 추구 행위를 통해 확보되는 이런 자아상징들은, 직접적 노력 통해 획득되는 자아상징과는 달리, 자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만큼, 도취적 관심으로 충전될 때조차 당사자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기가 쉽다. 관심의 중심자리를 차지한 것은 어쨌든 자신이 아닌 대상이므로, 자기가 높이는 대상이 결국 자기 자신이란 점을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001-20250912-015909.jpg 대상을 매개로 한 자의식 팽창 과정과 대상을 향한 사랑은 종종 혼동된다.



하지만 이 과정이 당사자의 자아상을 부풀린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식으로 도취를 일으키는 당사자는 자신의 소유물을 대상으로 눈먼 찬사를 보낸 뒤 그 대상에다 자아 관념을 연결함으로써, 즉 그것이 ‘내 것’ 임을 재확인함으로써 그 매혹의 효과가 자아를 향해 흘러들도록 만드는데, 이 과정은 ‘나’ 관념을 중심으로 도취를 일으키는 상황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다.


자기 반영물을 통해 다소 은밀하고 소극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긴 해도 그 본성 자체는 결국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 역시 직접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전형적 도취 유형에다 포함시키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관계 형성 능력을 통해 확보되고 유지되는 자아상징이 반드시 도취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말은 아니다. 당사자의 관심이 대상 내부로 깊숙이 스며들 경우, 즉 그가 그 대상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사랑할 경우, 이 유형의 자아상징은 당사자에게 자력으로 확보한 자아상징 못지않은 양분의 원천이 되어줄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관계 형성 능력에 기반을 둔 추구 행위의 가치를 드러내주는 중대한 측면인 만큼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이 과정에 섞여 들어가는 도취의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도취, 혹은 매혹은 대상의 표면 위로 관심 부풀리는 과정이란 점에서 대상 내부로 침투하는 과정인 사랑과 엄연히 구분된다. 아마 이 점만 제대로 인식해도 대상을 매개로 한 자의식 팽창 과정과 대상을 향한 사랑을 혼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007-20250912-013409.jpg 도취 대상의 유형들.



아무튼, 이를 통해 전형적인 방식으로 유발되는 도취의 대상에도 나름의 종류가 있다는 점이 명백해졌을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추구 및 성취 과정과 연관된 도취의 대상은 자발적 노력에 중점을 둔 추구 행위를 통해 획득된 뒤 ‘나’ 관념에 귀속되는 자아상징과, 관계 형성 시도에 중점을 둔 추구 행위를 통해 확보된 뒤 ‘내 것’의 영역에 머무는 자아상징, 둘로 구분된다.


비록 이 둘 사이의 경계가 그리 뚜렷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분류를 해둔다면 아마도 도취가 일어나는 각 상황에서 대상을 알아차리는데 도움 될 것이다.*


*추구를 통해 획득된 대상뿐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과 공상적으로 설정된 것 역시 도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선천적 대상’이란 외모나 부모의 지위처럼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대상을 뜻하고, ‘공상적 대상’이란 환상적 성과나 관계처럼 현실성이 결여된 대상을 뜻한다.

‘나’와 ‘내 것’이란 분류 척도는 보다시피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도취의 대상들을 명백 인식하려면 아마도 이 모든 요인을 전부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추구 과정이 전제된 도취의 대상들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해 나갈 생각이다.



#자만 #자기 예찬 #자기 높임 #자아도취 #과정 알아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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