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오노미치 여행 Day2
오노미치는 도보로 이동 가능한 작은 항구마을이다. 관광객들이 히로시마 여행을 오며 당일치기로 방문하는 소도시. 하지만, 나는 4박 5일 일정으로 잡았다. 고즈넉한 바닷가 마을에서 생각을 비우고 싶었다.
첫날을 제외하곤, 자유일정으로 잡았다. 걸음이 닿는 대로 천천히 여행해 볼 생각이었다. 10월 초의 오노미치는 여름 날씨라고 보면 된다. 자외선도 강하고 조금만 분주하게 움직여도 땀으로 샤워를 했기 때문이다. 선비의 걸음걸이가 필요했다.
오전에는 날씨가 무척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정오에 가까워지자 온도가 점점 불가마처럼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해안가 길을 따라 산책하는데, 강렬한 햇볕이 정수리에 내리 꽂혔다.
에어컨… 아니, 파워냉방이 필요했다. 카페가 간절했다. 상점가를 걸으며 탐색했다. 창문이 활짝 열린 작은 카페들, 뜨겁게 달궈진 야외 좌석에서 음료를 마시는 손님들. 내가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었나 하는 의문과 함께 식은땀이 흘렀다. 멈추지 않고 쭉쭉 걸어 나갔다. 그렇게 닿은 오노미치 역.
오노미치에 스타벅스는 없지만, 추억의 미스터도넛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미스터도넛이 확장하던 시절, 폰데링 도넛을 먹으러 친구들과 종종 찾았었다. 그 쫀득한 식감을 정말 좋아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반가웠다. 미스터도넛의 빈틈없이 꽉 닫힌 유리문이 흡족스러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피부에 닿는 시원한 공기. 온화해지는 얼굴, 안락한 1인용 좌석, 실내 화장실까지 완벽했다.
다만 도넛 진열대에 내가 선호하는 쫄깃쫄깃한 폰데링은 거의 빠져있었다. 폰데링의 모습을 한 도넛 하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이게 며칠 만에 먹어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던가. 한 모금 마시는데 냉기 가득한 행복감이 온몸으로 번졌다. 이어서 도넛을 베어 물자, 하얀 크림이 빼꼼 튀어나왔다.
…누구세요?
폰데링 특유의 쫀득쫀득한 식감은 온데 없고,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가공 크림. 약속도 없이 웬일이야… 생크림 특유의 살아있는 우유맛과 달달함도 없이.
카페를 나오자 다시 후끈한 열기에 휩싸였다. 도로 건너편, 역 앞 광장에 벼룩시장이 열렸다. 오노미치는 고즈넉한 마을이다. 이렇게 인파가 몰린 건 처음 본다. 양산을 접고 벼룩시장을 둘러보았다. 보물 찾기를 기대했으나, 건질만한 건 없었다. 광장 옆 해안 산책로로 향했다.
활기 띈 광장과 반대로 산책로는 한산했다.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자리마다 커다란 차양막이 꽂혀 있었다. 그늘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오가는 선박들과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해안 길을 따라 걸었다. 찰랑이는 푸른 바다 위로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멀리 떨어져 바라본 그들은 그림처럼 예뻤다. 땡볕 아래, 차양막 그늘도 없이 낚시 중이었다. 태양을 피하기 바쁜 나와 대조적인 그들.
…정말 강해 보였다.
현재 위치는 숙소 인근의 페리 선착장. 바다 건너편에 위치한 무카이시마 섬에 가보기로 했다. 이동수단이 되어줄 페리의 편도 요금은 성인 100엔, 어린이 50엔, 차량 30엔. 페리가 출발하면 승무원 아저씨가 돌아다니며 요금을 걷는다.
버스 타듯 사람들이 줄 서서 배를 타고 건너는 분위기가 독특했다. 페리에 탑승한 인원은 총 세 명. 도보 승객인 나와 자전거를 끌고 탑승한 여자, 차량을 몰고 탑승한 운전자. 앞에 선 여자의 긴치마가 거친 바람에 펄럭였다. 내 머리카락도 휘날리며 얼굴과 목 주변에 들러붙었다. 물살을 가르는 소리와 페리의 요란한 엔진소리. 습한 쇠 냄새와 기름 냄새가 났다.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건너는 느낌이 좋았다.
‘이게 섬 마을의 일상이구나.’
잠시나마 오노미치 주민들의 삶 속에 스며든 기분이었다. 언제가 오노미치에 여행이 아닌,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창문을 열면 늘 바다 건너 작은 섬이 보였다. 바로 무카이시마 섬이다. 여긴 관광지라기보다 평범하고 조용한 시골 동네 같은 분위기였다. 섬을 짧게 도는 동안, 동네 사람들을 거의 마주치지 못했다. 바닷가 근처에 낚시하는 사람들과 아이들만 보일 뿐이었다. 동네 아이들끼리 낚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생활이자 놀이에 가까운 익숙함.
골목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쳤다. 가볍고 날쌔게 트럭 위로 점프하는 냥이. 이어서 우아하게 앞발을 내딛는데, 그만 발을 헛디뎠다. 기우뚱하며 몸개그를 선보였다. 그리고 분명 녀석의 당황한 표정을 본 것 같은데...
구글지도를 켰다. 한국에서 미리 찾아둔 무카이시마섬 스팟을 찾아가기 위해서. 섬의 구불구불한 언덕 둘레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 끝에 도착한 작은 공원. 벤치에 차양막은 없지만, 무성한 나뭇잎이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벤치에 앉으면 바다 건너 오노미치 마을이 보인다.
바다 위로 작은 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해변가엔 건물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언덕에 세워진 낮은 건물과 사찰들, 줄을 타고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오노미치를 보며 결심했다. 꼭 오노미치에서 살아 보자고.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