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구라시키 여행 Day1-1
오노미치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어묵과 곤약, 가라아게, 문어 샐러드를 하이볼과 함께 먹었다. 오노미치의 마지막 밤을 즐기고자 홀로 조촐한 야식 파티를 열었다. 하지만 흡입 속도 조절 실패로 20분 만에 파티는 끝났다.
대충 치워두고 침대에 세상 편하게 드러누웠다.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참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크고 선명한 노크 소리. 분명 내 방 문을 두드린 소리다.
그런데.
…내 방에는 올 사람이 없는데?
난 혼자 여행 왔고, 룸서비스를 시킨 적도 없다. 대체 누가 내 방에 찾아와서 노크를…
똑똑.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을 잘 못 찾았나? 취객인가? 강도? 빠르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첫날 떼놓았던 구둣주걱 만한 호텔의 아크릴 열쇠고리가 보였다. 혹시 모르니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 문구멍을 들여다보았다.
희끗한 머리의 호텔 지배인.
로비에서 종종 보았던 진중하고 친절한 직원.
문을 활짝 열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긴 호텔 지배인 아저씨. 1920년대의 전형적인 호텔 지배인처럼 생겼다. 만화 속 캐릭터처럼 외알 안경을 낄 것만 같은…
“열쇠가 문고리에 꽂혀 있습니다.”
“예?!”
화들짝 놀라서 복도로 튀어나갔다. 눈앞에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 펼쳐졌다. 문고리에 꽂혀 있는 작은 열쇠. 오노미치에 도착했던 첫날, 아크릴 열쇠고리를 떼놓았던 그 작고 가벼운 열쇠였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에 번졌다.
“위험합니다.”
“스미마셍…”
지배인 아저씨의 근엄한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그러고는 문고리에 꽂힌 열쇠를 뽑아서 건네주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밤에 찾아온 은인 덕에 문단속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호텔을 나와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이대로 쭉 걸으면 오노미치역이 나온다. 아쉬움에 곧장 역으로 향하질 못했다. 중간중간 멈춰 서서 오노미치를 담았다. 포토스팟에서 마지막 기념촬영도 했다. 내 캐리어, 살구를 삼각대로 사용했다. 여행하는 동안 녀석의 중량이 크게 늘어 계단을 마주할 때마다 식은땀이 났다.
역 앞 세븐일레븐에서 멜론빵과 커피를 샀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사 대기실에서 아침으로 멜론빵을 먹었다. 세븐일레븐 멜론빵은 제과점에도 밀리지 않는다. 여행하는 동안 종종 사 먹었다.
열차가 들어올 시간이 되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오노미치. 플랫폼에 들어서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 올게.
구라시키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 대신 바람막이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썼다. 구라시키역에서 숙소까지 15분 정도 걸어야 했지만, 바로 길 건너편에 구라시키 미관지구가 있었다.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였다.
빗물을 털어내고 호텔에 들어갔다. 프런트 데스크에는 키가 작은 여직원이 응대 중이었다.
“짐만 먼저 맡길 수 있을까요?”
“네, 저한테 주세요.”
“애프터눈 티는 몇 시부터 가능해요?”
직원에게 캐리어를 맡기며 물었다.
“지금도 가능해요.”
“그럼 지금 서비스받을 수 있을까요?”
“네,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걸려요.”
직원이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아듣진 못했다. 애프터눈 티 디저트를 본인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이해한 줄 알았다. 직원은 요리사나 파티시에 복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반짝이는 로비. 그리고 한편에 마련된 라운지. 통창 옆 환한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넓은 라운지에 손님이라곤 나뿐이었다. 무척 한산했다.
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애프터눈 티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였다.
구라시키 미관지구 근처 호텔 후기를 형사처럼 샅샅이 파헤치던 어느 날. 애프터눈 티 사진에 마음을 홀라당 빼앗겼다. 시즌마다 달라지는 컨셉과 화려한 자태에 눈을 현혹당했다.
다만,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할로윈 시즌이라 디저트의 컨셉이 오묘했다. 맛을 볼 때마다 예측이 빗나갔다. 기대했던 달달하고 담백한 맛은 아니었지만, 눈은 즐거웠다.
배도 적당히 채웠겠다, 산책할 겸 구라시키를 돌아보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