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시키의 극진한 접객

여자 혼자 구라시키 여행기 Day1-2

by 레이다


후폭풍


에프터눈 티 서비스로 한 달치 디저트를 다 먹은 것 같다. 구라시키 시내를 구경하면서도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김치.


이번 여행동안 간장베이스 음식을 물릴 만큼 먹었다. 일본은 고춧가루 사용이 법으로 금지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칼칼한 음식 찾기가 어려웠다.


매콤한 한식이 간절했다. 그중에서도 김치. 갓 지은 쌀밥에 김치 한 조각 올려서 한 입만 먹을 수 있다면… 반찬으로 나온 김치조차 잘 먹지 않던 나였는데, 일본에서 김치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


역 근처 할인마트로 향했다.


마트에는 신라면, 떡볶이, 불닭볶음면 등등 인기 있는 한국 식품들이 보였다. 쓸어 담고 싶었지만 진정하고 냉장코너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김치가 진열되어 있었다. 묘한 한국어 문장의 패키지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일본 업체에서 만든 김치였다. 어설픈 한국어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었다.


‘원어민은 못 속이지.’


딱 하나 남은 귀한 종가 맛김치를 집었다. 뚜껑을 돌려서 여는 밀폐용기도 맘에 들었다. 숙소에 보관하는 동안 냄새가 덜 새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옆구리에 소중히 품었다.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옷을 적시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신라면이랑 같이 해치워야지.’



신라면과 김치. 우측은 마지막 남은 종가 김치를 내가 집었다.



오노미치에는 대형마트도 없고, 편의점도 딱 두 곳뿐이었다. 오노미치역 앞의 세븐일레븐과 도보 15분가량 떨어져 있는 로손. 그와 대비되는 구라시키 거리가 인상적이다. 큰 대로변을 중심으로 곳곳에 편의점이 보였다. 역 근처에는 백화점과 아웃렛, 대형마트도 영업 중이었다. 규모가 제법 큰 도시였다.



구라시키역 버스터미널과 백화점(좌) 역 앞 번화가(우)



황송한 접객


숙소로 돌아와 소중한 김치를 냉장고에 모셨다. 나머지 짐은 대충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저녁으로 야키니쿠를 먹으러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냄새가 많이 베일 것 같아 반팔티 위에 체크셔츠를 입었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 후줄근한 여자. 밥 먹으러 가는데 괜히 틴트를 발랐다. 거울을 향해 웃어보았다. 후줄근한 사람이 틴트 덧발랐을 뿐이다.


호텔을 나와 몇 걸음 걷으니 식당에 도착했다. 안전 귀가는 확정된 듯 보였다.


점원의 안내에 따라 긴 일자형 테이블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면 주방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혼자 방문한 손님은 나 포함 두 명. 먼저 온 정장 차림의 아저씨가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홀에는 외국인 단체 손님이 눈에 띄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점원에게 메뉴판을 요청하자, QR 주문시스템을 안내해 주었다. 추가 주문도 QR로 접속한 웹페이지에서 터치 몇 번으로 주문하면 됐다. 한국어도 지원해서 편리했다.



개인 화로와 특수부위 우설



여직원이 개인 화로와 생맥주, 샐러드를 우선 세팅해 줬다. 그리고 곧 나온 특수부위 우설.


소의 혀. 그걸 어떻게 먹어…

오돌토돌 혀 돌기가 징그럽다며 소머리국밥도 먹지 않던 나였다.

하지만, 현재 두 접시 째 우설을 주문하고 있다. 적당히 익은 우설이 입 안에서 녹아내렸다. 함께 준비해 준 레몬소금을 올려 먹으면 절로 황홀한 표정이 나온다.


“으음~”


그런 나를 보고 있던 주방의 요리사.

눈이 맞았다. 눈가에 주름이 접히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맛 괜찮아요?”


연상의 남자.

바보 같은 표정을 들킨 것이 쑥스러워 웃음으로 덮고 말했다.


“너무 맛있어요.”


수줍지만 엄지를 척하니 치켜들고 확신하는 표정을 지었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준 상대에 대한 예의.


남자가 또 웃는다. 다시 보니 웃고 있는 까만 얼굴이 개구지다. 치아 사이로 덧니가 뾱하고 나 있었다.


겨우 생맥주 마셨을 뿐인데, 화로 때문인지 취기가 돌았다. 와규 갈비를 추가로 주문하고, 주문이 제대로 들어간 건지 남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아, 한국어 화면.‘


하지만 익숙한지 다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일 식당은 퇴근길 직장인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주방엔 주문서가 줄지어 붙어 있었고, 점원들은 분주했다. 식당은 뿌연 연기가 가득했고, 온갖 외국어가 뒤섞여 있었다.



부드러운 와규 갈비와 잘 익은 우설.



화로에 마지막 고기를 올릴 때쯤, 주문했던 와규 갈비가 도착했다. 갈비 또한 부드러웠다. 심줄 하나 없이 솜사탕처럼 녹았다.


홀로 고기 4인분을 해치웠다. 식당의 음식, 점원들의 서비스 모두 훌륭했다. 그동안 여행하며 불만족스러운 식사로 실망이 컸는데, 이를 보복하듯 먹어치웠다.


지갑은 얇아졌지만, 최고의 맛집이었다. 오코노미야끼가 아무리 맛있다 한들, 고기는 이길 수 없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니 밖의 공기가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졌다.


드르륵.


식당 문을 열고 점원 두 사람이 따라 나왔다.

내 테이블을 담당했던 점원과 남자요리사가 따라 나와 인사했다. 일본에서 간혹 마주하는 이런 접객이 황송하게 느껴진다.


남자가 일본어로 “맛있게 먹었냐, 만족스러웠냐, 고맙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상황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언어 너머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두 분 너~~무너무 친절하세요.”


취기에 기분이 업됐다. 동작이 커지고, 만면에 미소를 띤다.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았다. 양손을 쫙 펴 흔들었다.


“바이바이.”



숙소에서 2차, 신라면과 김치



keyword
이전 09화오노미치, 마지막 날 : 밤에 찾아온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