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시키, 와슈잔 하이랜드 탈출기

여자 혼자 구라시키 여행 Day2-2

by 레이다


해발 200m 대관람차


드디어 브라질 파크, 와슈잔 하이랜드에 도착했다. 산 중턱의 입구에 들어서자 흥겨운 삼바가 흘러나왔다.


대관람차를 타기 위해 길고 긴 계단을 올랐다. 관람차는 산 꼭대기에 있었다. 계단 끝에 오르자 숨이 차고 땀이 흘렀다. 관람차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뒤로 젖혀 운행 중인 관람차를 살폈다. 그 높이가 상당했다. 객실 외벽은 색이 바래 있었다. 대부분 빈 객실이었고, 눈에 띄게 흔들리는 객실은 손님이 탑승 중이었다.



대관람차 타러 가는 길
대관람차와 악어 다리 바베큐를 팔던 스낵바(우측)



직원에게 자유이용권을 내밀었다. 티켓을 확인한 직원은 내가 탑승할 객실을 안내하며, 표는 더 이상 보여줄 필요 없다고 귀띔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 긴장하고 있었는데, 맘 편히 가방에 쑥 넣었다.


관람차가 중간까지 올라갔을 때, 아름다운 세토내해 풍경이 드러났다. 반대편에는 산 너머 도심이 보였다. 이걸 보려고 먼 길을 달려왔지. 이 아름다운 장면을 기록하느라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덧 2/3 가량 올라온 채였다.


그런데, 풍경에 정신을 빼앗겨 잠시 잊은 것이 있었다.


고소공포증.




10년 전, 가족들과 함께 떠났던 가을의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도착했다. 등산객들은 양 옆이 뻥 뚫린 낭떠러지를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었다. 마치 동네 공원의 산책로처럼. 꽉 쥔 주먹에 땀이 고였다. 내 눈엔 저건 길이 아니라 그저 낭떠러지 암벽일 뿐이었다. 그 사이, 가족들이 낭떠러지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라며 포즈를 취했다. 나는 암벽 바닥에 이끼처럼 들러붙어 음소거에 가깝게 외쳤다.


“안돼…! 위험해. 안으로 들어와….”

“너 왜 그러고 있어?”

“빨리 찍어.”


고소공포증이 없는 가족들은 내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흙먼지 위에서 포복자세로 기고 있는 나의 생존본능을.


그때, 옆에서 누군가 외쳤다.


“어머나 세상에! 위험해요.”

“엄마, 나 너무 무서워…”

“어머, 우린 무서워서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겁도 없으셔 정말…”


고개를 돌리니, 내 뒤에 나와 똑같은 자세의 성인 모녀가 있었다. 그들은 바람에 날아갈까 바닥에 납작 엎드려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우린 진한 동지애를 느꼈다.




내가 탑승한 객실이 천천히 꼭대기로 이동 중이었다. 그땐 동지들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완전히 혼자였다. 그리고 중반을 벗어난 지점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삐걱 거리는 소리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소리가 공포영화 효과음 같았다. 흔들리는 객실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세상 모든 신을 찾았다.



객실 내, 좌측 도심 풍경
객실 내, 우측 세토내해 풍경



나무늘보


이 먼 곳까지 달려온 이유. 세토내해를 배경으로 하늘자전거 사진을 담고 싶었다.


내 앞으로 사복을 입은 학생들이 8명 정도 서 있었다. 날이 어찌나 더운지 학생들의 까만 티셔츠에 소금줄이 성운처럼 번져 있었다. 나도 검은 상의 입고 왔는데…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쳤다. 자전거 페달을 올림픽 출전한 듯 밟아 댔고, 범퍼카처럼 앞 자전거를 들이박았다. 관람차만큼은 아니지만, 하늘 자전거 레일 역시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어 아찔했다.


앞서 가던 학생들은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아 벌써 저만치 멀어졌다. 나는 갈수록 다리에 힘이 풀려 수시로 레일 뒤를 확인했다. 다행히 내가 내릴 때까지 다른 손님은 오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 엔진 출력은 나무늘보 수준이었으니까.



청춘 영화 같았던...
범퍼카 친구들.
이 풍경을 직접 보고 싶었다. 대대대만족
하늘 자전거 그림자 인증샷
메인 롤러코스터
기프트샵. 묘하게 귀엽지 않은 캐릭터...
흥겨운 삼바가 끊임 없이 흐른다.



기묘한 소리


3시 40분.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다. 긴긴 계단을 다시 내려가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을 나와 휑한 주차장을 둘러보니, 관광버스 한 대가 눈에 띄었다. 버스 전면에 붙은 문구를 번역기에 돌렸다.


키리모토 고등학교 B반.


역시 셔틀버스가 아니었다. 올 때는 버스를 타고 놀이동산 입구에 하차할 수 있었지만, 갈 때는 아니다. 보행로가 없는 도로변을 따라 버스정거장까지 20분가량 걸어가야 했다. 이 길로 가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으나,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갓길로 걷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걸으며 구글 지도를 실시간으로 살폈다.


도로를 쭉 따라 내려가면
작은 마을과 세토내해를 만날 수 있다.
스산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적 없는 고요한 숲 길이 나왔다. 바람소리 마저 음산하게 들렸다. 걸을 때마다 발에 차이는 낙엽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꾸 고개를 돌려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 걸음이 빨라졌다.


이제 버스정거장이 나올 때가 됐는데, 나타나질 않는다. 조급한 마음에 구글지도를 새로고침 했다. 아… 잘못된 선택이었다. 버스가 이미 출발한 건지 끊긴 건지, 구글 지도가 최신 경로를 새로 안내했다. 맙소사, 도보 이동 시간이 20분에서 55분으로 늘어났다.


…진짜 울고 싶다.


하지만 한가하게 울 시간도 이 순간엔 사치였다. 울더라도 경보하며 울어야 했다. 육교와 굴다리를 건너 숨차도록 이동하는 사이, 어느새 마을 뒷산 산책로로 추정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보행로 오른쪽은 언덕 아래 바닷가 마을, 왼쪽은 나무가 우거진 산이었다. 내 마음이 조급해서 풍경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을 산책로로 추정되는 그 길)



한 시간 뒤면 완전히 해가 저문다. 스산한 기운이 드는 이 보행로에 접어들 때까지 마주친 사람이라곤, 단 한 사람뿐이었다. 도로에서 앞서 걷던 아저씨! 거긴 차가 다니는 도로였지만, 여긴… 도로도 없고, 사람도 없다. 그저 새 울음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그리고 좀 전부터 들리던 기묘한 소리. 소리가 나는 방향에 집중했다.


수풀 너머 기계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졌다.


“어? 나 이 소리 아는데…?”

“그래, 고어물에 나오는… 아, 전기톱 소리다!”

…그게 왜 여기서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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