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시키 마지막 밤 : 소리의 정체

여자 혼자 구라시키 여행기 Day2-3

by 레이다


소리의 정체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소리가 점점 크고 선명해졌다.

다리는 성실히 경보를 이어갔고, 겁먹은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서 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여기서 버스 끊기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기계음 소리가 들려오는 곳. 수풀 너머 수면 위로 커다란 전광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바다 위로 작은 보트 한 대가 요란한 엔진 소음을 내며 미끄러져 나갔다.


전기톱 소리의 정체.

보트 레이스 경기장.


지도앱에서 보트 경기장을 상세히 찾아봤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주로 보였고, 한국으로 치면 경마장 같은 장소였다. 긴장하여 한껏 치솟은 어깨가 느슨하게 풀렸다.


안도감에 코가 시큰했다.

‘괜히 겁먹었네.’


허탈함에 큼직한 전광판을 멍하니 바라보다 내가 멈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걸음을 서두르며 벌써 어둑해지고 있는 하늘을 크게 훑었다.



보트 레이스 경기장과 전광판



얼마나 더 걸었을까. 드디어 언덕에서 내려와 마을의 평지에 접어들었다. 주택가를 가로지르자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야기 나누는 노인들, 자전거로 하교하는 학생, 엄마 손을 잡고 걷는 모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주택가 끝에 다다르자 큰 도로가 나왔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무언가에 이끌리듯 고개를 돌리니 마을 너머, 산 꼭대기에 대관람차가 보였다. 병뚜껑만큼 작아진 대관람차를 바라보자 고도 200m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너무 지쳐서 다시 찍고 싶은 맘이 0%



한 시간을 헤매고 나서야 버스정거장에 도착했다. 마을 골목에 위치한 버스정거장에 서서 버스 시간을 체크했다. 이제 숙소에 돌아갈 수 있고, 내일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 노을에 물든 마을이 평화롭게 보였다.



정거장 너머 내가 넘어온 산이 보인다.
노을이 지고 있다.



마감시간의 대형마트


버스에서 상모를 돌리며 한 참을 졸았더니 목이 뻐근했다. 목적지에 내려 가볍게 목을 풀었다. 이미 어둑해진 구라시키역 주변의 밤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피곤한 몸은 숙소로 돌아가길 원했으나, 오늘 마지막 목적지가 남아 있었다.


일본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 바로 대형마트에서 장보기.



복합 쇼핑몰과 대형마트
바로 옆에 아웃렛도 있다.



장바구니를 들고 식품코너부터 돌았다. 40% 할인 딱지가 붙은 신선식품들이 눈에 띄었다. 마감 시간이라 할인 딱지가 겹겹이 붙어 있었다. 옆에선 구라시키 주민이 생선회를 들었다 놨다 고민 중이었다.


나는 초밥을 원했으나 캘리포니아롤과 생선회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종류가 다른 모둠 생선회 두 팩과 가라아게 한 팩을 집었다. 랩에 쌓인 튀김 표면을 만져보니 아직 바삭했다. 만족스러운 조합이었다.


치킨에 맥주가 빠질 수 없지.


그렇게 찾아간 주류코너에서 내 눈을 의심했다. 국내에선 4캔 만 원 행사에 끼지도 않던 콧대 높은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캔이 카스보다 저렴했다. 번들로 담고 싶었으나 내일 출국이므로 자제했다.


마지막으로 환타 멜론소다를 담고 계산을 마쳤다. 일본 콘텐츠에서 자주 등장하는 멜론소다가 대체 무슨 맛일지 궁금했다. 마실 것이 늘자 어느덧 장바구니가 묵직해졌다.


무거운 짐을 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후들거리는 팔다리에 자꾸 걸음이 느려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멈추면 숙소까지 못 간다. 김치와 함께 장본 음식들을 맛있게 먹을 생각에 마지막 힘을 짜냈다. 그리고 내일 집에 돌아가면 김치찌개를 꼭 먹을 테다…

기다려라 김치찌개.


할인 딱지가 붙어있던 가라아게
호텔에서 얼음컵을 제공해준다. 맥주는 얼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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