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일진과 함께한 13년 만의 첫 면접

공포가 만든 괴물

by 레이다


승객이 거의 없는 버스.


허공을 바라보는 초점 없는 눈,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입. 단정한 머리, 블라우스와 바지에는 구김 하나 없는 멀끔한 차림새의 여자.


…나다.


면접 시간은 2시간이나 남았지만, 면접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면접 예상 질문지를 달달 외우고 있다. 지도앱으로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확인했다. 점점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창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에 눈이 번쩍 떠졌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잠들기 전 외웠던 스크립트를 읊었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더듬다 말문이 막힌다.


큰일 났다… 전혀 외워지지 않았다. 키워드는 반도 못 외웠고,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나는 여태 허공에 대고 답변을 하고 있었다. 면접관들은 투명인간이 아니다. 질문을 던져줄 ‘대상’이 필요했다. 유튜브에서 면접 시뮬레이션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 속 면접관이 내게 질문을 던지고, 나는 대답을 하면 되는 형식. 영상 속 싸늘한 면접관과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제부터 미친 듯이 외웠던 키워드들이 백지화되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손을 뻗어 영상을 꺼버렸다.


‘이걸 오후까지 제대로 외울 수 있을까?’

‘가지 말까?’


아침을 먹으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소파에 앉아 있으면서도,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신발을 꺼내 신으면서도, 버스에 올라타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가지 말까?


그리고 현재.

비 내리는 빌딩 숲 한가운데, 우산을 쓰고 서있다.


아직 면접 시간까지 1시간 40분가량 남아있다. 오피스빌딩 로비엔 보통 라운지가 있으니 거기서 복잡한 마음도 진정시키고, 스크립트도 외울 겸 일찍 왔다. 라운지는 굉장히 크고, 널찍한 소파와 의자가 다수 배치되어 있었다. 사원증을 건 직원들이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하거나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빈자리에 앉아 면접준비를 했다.


한 시간 넘게 스크립트를 외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옆 테이블에 앉았다.


남자와 여자.

상사로 보이는 남자, 부하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 음량을 낮춰 은밀하게 주고받은 대화였지만, 거리가 가까워서 거진 들렸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권고사직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남자 혼자 얘기하고 있었다. 손에 쥔 음료만 바라보는 여자. 나도 권고사직 통보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잠시 생각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아직도 키워드가 정확히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람이 울렸다.

면접 15분 전이었다.

시간을 확인하자, 긴장감이 같이 가자며 어깨동무를 해왔다. 놈은 내 담당 일진이었다.


가방에서 구두를 꺼내 갈아 신었다. 얼마 만에 신어보는 구두인지 모르겠다. 사놓고 한 번도 신지 않았는데 이렇게 신네. 신고 왔던 조리는 비닐봉지에 싸매 가방에 숨겼다. 내 담당 일진도 비닐에 쑤셔 넣고 싶었다.


떨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내 마음속에선 여전히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싸우고 있었다.


‘불가능해. 당장 도망쳐. 스크립트도 제대로 못 외워놓고. 이 면접 망치면 자괴감으로 다시 일어서지도 못한다고. 내 말 들어.’


‘아니, 망쳐도 괜찮아. 오늘 합격하러 가는 게 아니라, 면접 경험 쌓으러 가는 거야. 그러니까 한 번 가보자. 도망치지 마. 여기까지 온 게 아깝잖아.’


이제 진짜 면접 시간이 되었다. 출입증을 받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도망치지 않는다.

올라간다.




면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내 상상 속 면접관은 범죄자를 심문하는 듯한 형사의 모습이었으나, 눈앞의 면접관들은 전혀 달랐다. 노트북을 들여다보면서도 내 얘기에 끄덕이는 고개, 한 번씩 맞추는 눈은 싸늘하지 않았다. 공포가 만든 괴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지친 기색의 직장인일 뿐이었다.


최고조로 치닫았던 긴장감이 풀리며 안정을 되찾았다. 면접관들을 마주 보며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소개했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내 지난 시간이 묻어났다.


나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껏 쌓아온 경력과 시간이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며 통유리 너머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오늘 와서 다행이다.’


해방감.

그 순간 내가 조금 좋아졌다.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관짝 안에서 새어 나오는 노크 소리.


“저기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저 좀 꺼내주세요.”


관짝에 안치했던 자존감이 부활했다.

내 자존감은 지저스가 아닌 각설이였다.

죽지도 않고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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