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5세 정년퇴직
팀장님.
액정 위로 뜬 이름. 점심을 먹는데 전화가 왔다. 함께 일했던 전 팀장님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팀장님, 잘 지내요?”
함께 일하며 우여곡절이 많은 상대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얽힌 오해를 풀고 나서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팀장님의 전화가 유난히 반가웠던 이유가 있었다.
몇 개월 전, 층간소음으로 집이 고통으로 느껴지던 시기. 회사 소식을 전해주던 동기가 “너희 예전 팀, 인력 충원 중이던데?”라고 귀띔해 줬다.
팀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인력 충원 계획이 있었지만, 회사 경영난의 문제로 채용이 취소되었다고. 다시 충원 계획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연락 주겠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지금인가…?
“우리 팀 단체로 권고사직 당했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팀장님은 오전에 일어난 사건을 쏟아내듯 이야기했다. 저 양반 찌르면 피 나오나? 싶을 만큼 평정심을 잘 유지하던 사람이었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넌 어떻게 지내? 취업은 한 거야?”
“아뇨. 아직 포트폴리오 만들고 있어요.”
“뭐어? 포트폴리오 안 만들고 그동안 뭐 했어?”
“…취업 준비할 여유가 없었어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재활 중이었지. 대신 영상 만든다는 얘기를 툭 던졌다.
“영상 편집 쪽으로 일하려고?”
“제 채널 운영하느라 영상 제작 중이에요.”
“유튜브? 그게 돈이 돼? 구독자 몇 명인데?”
“구독자는 7,500명 정도 있어요. 수익화는 아직이지만 운영 방법을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영상 만들고, 책 읽고, 영어도 공부해요.”
“그렇구나… 계획이 있었구나. 난 어쩌니?”
“팀장님, 방과 후 교사 지원했던 건 어떻게 됐어요?”
“안 됐어. 요즘 애엄마들 사이에서 인기 직종이라 경쟁이 치열해. 그리고 뭔 팀장님이야. 이제 팀장도 아닌데, 언니라고 해.”
통화를 마치고 몇 주 뒤, 또 다른 동료의 전화가 걸려왔다. 종종 좋은 소식을 전달해 주던 친한 동료라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영수님, 잘 지내셨어요?”
“하하, 네. 지금 어디세요? 통화 가능해요?”
“집이에요.”
“아직 취업 안 하신 거예요?”
여기까지가 동료들의 흔한 안부 패턴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현재 채용이 얼마나 줄었는지, 중소기업 채용공고 하나에 얼마나 많은 경쟁자가 몰려드는지, 내 경력과 나이가 취업 시장에서 얼마나 외면받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었다. 하지만 설명을 이어갈수록 변명처럼 들렸다. 왜 납득시키려 애쓰고 있지.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전화드렸는데… 저도 이번에 권고사직 당했어요.”
“아…”
이제 막 권고사직을 통보받고, 울타리 밖으로 쫓겨날 위기에 놓인 실직자 후배들. 그들은 실직자 선배가 재취업에 성공했길 기대했다. 나는 선발대였으니까. 하지만 후배들이 갈구하는 희망을 주진 못했다. 내 취업의 성패가 이렇게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거였나. 마음이 무거웠다.
작년,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옆에서 걷던 영수님이 화두를 던졌다.
“그거 아세요? 중국은 평균 퇴직 연령이 35살이래요.”
“35살이면 커리어 쌓으면서 자산 만들어갈 나이잖아요.”
“매년 고학력 졸업자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연봉 높은 경력직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알바 시급 1,200원 주는 곳도 있고요.”
“살벌하네요.”
그땐 그저 남의 나라 일인 줄 알았다.
그 주인공이 우리가 되리라곤 예상 못하고.
7년 만에 우연히 동창을 마주쳤다.
어떻게 햇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때는 2018년, 비트코인이 폭주하던 시기였다.
“지금 가상화폐 투자해야 해.”
“나? 퀀텀 샀지. 난 1만 원 대에 들어갔는데, 지금 8만 원 바라보고 있잖아. 조만간 이 코인 방송도 탄다는데 그럼 더 오르겠지. 우리 가족? 다 샀어.”
“아, 참고로 권유하는 건 아니다?”
혹해서 따라 샀다. 당시 내 평균가는 7만 원대. 따라 사면 부자는 못 돼도 목돈은 생길 것 같았다. 이후 어찌 되었냐고?
폭삭 망했다.
손절했던 비트코인은 로켓처럼 솟아올랐지만, 퀀텀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되었다. 우스개 소리로 “아빠, 왜 할머니는 유산으로 휴지조각을 남겼어?”라는 말이 돌았다.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웃었지만.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내가 선택한 투자고, 망한 것도 내 책임이다. 남탓할 생각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퀀텀이 폭삭 망한 이후 연락을 피했다.
그리고 7년 만에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너 코인 어떻게 됐어?”
“코인? 2천만 원 손해 보고 지금은 싹 다 정리했어. 지금은 부동산 투자해. 우리 집이 그래도 부동산으로는 돈 좀 벌고 있거든. 시기를 잘 잡은 거지. 이제 믿을 건 부동산뿐이야.”
확신에 찬 눈빛.
7년 전에도 딱 저 눈빛이었다.
가상화폐 소재에 허공을 맴돌던 초점이, 부동산으로 주제를 전환하며 활기를 찾았다.
“넌 그 회사 아직도 다녀? 거기 되게 오래 다녔잖아.”
“아니, 지금은 실업급여받으면서 쉬고 있어.”
오랜만에 만난 동창한테 권고사직 당했다는 말은 차마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나이에 이제 써주는 곳도 없는데.”
“사정이 있었어. 말하긴 복잡하고... 넌 일러스트레이터 일 계속하는 거야?”
“나야 계속 하지. 일이 밀려 들어온다니깐?”
씨익 웃는 그녀의 얼굴에 그린치가 보였다.
“그쪽 업계는 정년이 없지?”
“없지. 나이 들어서도 내가 의지만 있으면 계속 일할 수 있어. 너도 해보라니까? 야아, 나 PT시간 다 됐다. 먼저 간다.”
손을 흔들며 횡단보도 너머로 멀어지는 동창.
그녀는 7년 전에도 내게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해 보라 권했었다. 13년을 디자이너로 살며, 그림에 손 뗀 지 오래였다. 구조가 복잡한 사물 하나 그리려면 수십 번을 지우고 다시 그려야 했다. 예전엔 펜으로 한 번에 쓱 그렸던 것 같은데.
‘나도 다시 그리고는 싶지...’
이미 손은 다 굳은 데다 기본기도 잊어버렸다. 안정적인 수익원인 실업급여도 끝나가는 상황. 언제 다시 배우고 연마해서 자리 잡냐고…
터덜터덜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영수님과 동창의 말이 맴돌았다.
“중국은 정년이 35세래요.”
“나이 들어서도 내가 의지만 있으면 계속 일할 수 있어.”
AI가 디자이너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현실. 어쩌면 내게 다시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자꾸 달력을 확인하게 된다.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앞서 달리고 있다. 실업급여 수급 종료일은 임박했는데, 나는 아직도 출발선에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