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요행에서 배운 것
배당금 입고 알림이 떴다.
실업급여 종료를 앞두고 막막하던 차에 숨통이 트였다. 나는 배당주를 몇 가지 보유하고 있다.
올해 연 배당은 건보료 인상 기준인 1천만 원을 넘기지 않으려 조절 중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배당, 이자 소득 1천만 원 초과 시 건보료가 대폭 인상되기 때문이다. 내년엔 피할 수 없이 1,000만 원이 초과될 예정이다.
아직 취업 전이라 건보료 인상을 고려해 잠시 현상 유지해야 했다. 자리 잡을 때까진 비상금으로 생활하고, 배당금은 재투자할 거다. 내년은 연 배당을 늘리는 게 목표다. 돈이 없으면 마음의 여유도 없고, 조급한 선택을 하게 된다. 과거의 내가 그랬으니까.
처음 주식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회사 동기의 순수한 권유에서였다. 힘들게 번 돈, 함께 조금씩 불려 나가자는 호의.
“나 요즘 주식으로 매일 커피 값 정도 벌고 있어. 너희도 관심 가져봐.”
“너 뭐 사는데?”
“나는 지수 투자 하고 있어. 종목은 직접 공부하는 게 좋아.”
“아니, 네가 투자하는 종목 이름 말이야.”
“나는 *** 투자해.”
“나도 그거 사야겠다.”
“나도.”
“얘들아 그러면 안돼…”
나와 동기들은 커피 값 번다는 동기의 투자를 그대로 따라 했다. 방법을 모르니 30만 원 중 20만 원을 몽땅 단일가에 사들였다. 그 무렵 베트남의 경제 발전 뉴스를 자주 접했던 터라, 나머지 10만 원은 베트남 관련주에 넣었다. 종목명에 “베트남”이 들어갔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함께 투자하는 동료가 있어 즐거웠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낭떠러지로 향하는 쾌속선에 올라타 있었다. 투자는 점점 속도를 냈다. 누군가의 종목이 오르면 우르르 몰려가 따라 샀고, 선물이 뭔지도 모른 채 배팅했다. 끝내 상장폐지라는 가혹한 비극을 맞았다.
주인공은 언제나 가장 늦게 등장한다고 했던가. 내 무지한 국내주식 투자의 피날레를 장식할 비극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되었다.
경제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졌다. 국내 지수가 와르르 무너졌고, 내 돈이 갈려 나갔다. 여기저기서 개미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시 내가 자주 들르던 카페 운영자는 지수 투자를 권했다. “지금 팔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혼내줄 겁니다!”라고 큰소리쳤으나, 본인이 제일 먼저 줄행랑을 쳤다. 게시판은 억 소리 나는 손실과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절규로 뒤덮였다.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그 난리를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바닥을 잘 아는 큰손들이 “추가 매수로 단가를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손실을 보고 판단력이 흐려져 추매를 거듭했다. 멈춰야 했다… 손실이 3배로 불어났다.
가상화폐 투자까지 더해지며 차 한 대 값을 날렸다. 미래에 로켓처럼 날아오를 비트코인은 손절하고, 휴지조각이 될 퀀텀만 남겨두었다. 이때 담았던 ETF들은 손절 타이밍도 놓치고 반려주로 남았다.
다신, 다시는 가상화폐와 국내 지수투자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공부 없이 요행만 바란 내게 돌아온 건 처참한 결과뿐이었다.
이후 원금 보존에 집착하게 됐다.
할인가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공모주만 투자했다. 연차를 쓰고 증권사에 통장을 만들러 다닐 만큼 열성적이었다. 일괄 비례배정이던 공모주가, 균등배정 제도 개선이 되며 전 국민 공모주 투자 열풍이 불었다.
기업들의 상장이 이어졌으나, 주식시장 하락과 함께 공모주 시장은 얼어붙었다. 수익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로또를 바라던 기업들은 자취를 감췄다.
해외주식 열풍이 불던 때, 나는 해외주식을 시작하지 않았다. 소꿉친구 윤지가 테슬라에 투자하며 달콤한 수익을 맛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달콤한 맛을 함께 나누고 싶어 했지만, 나는 끝내 거부했다.
달러 환전과 수수료, 세금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다. 그중 환전의 허들이 가장 컸다. 별별 투자를 다 해봤지만, 해외주식만큼은 시작하지 않았다.
몇 해가 흐르고, 투자를 막던 허들이 사라졌다.
내 손에 쥐어진 40달러. “넌 투자만 해”라는 증권사의 달콤한 속삭임과 함께, 해외주식 계좌개설 이벤트로 40달러가 입고 되었다. 내 해외주식 투자의 막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