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언덕이 되어
금융사 이벤트로 받은 40달러가 내 해외주식 투자의 막을 열었다. 평소 애용하던 엔비디아와 애플 주식을 담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 무렵, 그래픽카드 공급 부족으로 유관부서가 물량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엔비디아의 주가 상승세 또한 심상치 않았다.
단순한 투자 종목을 넘어 기업과 산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음악 스트리밍을 끊고 경제 뉴스, 라디오, 책과 강의를 퇴근 후 매일 찾아봤다.
AI산업에 그래픽카드는 핵심 부품 중 하나였다. 고양이 지능이던 인공지능 챗봇은 날이 갈수록 사람과 대화하듯 친근함이 느껴졌고, 불가능할 거라 여겼던 예술 분야도 그림과 음악을 생성해 냈다.
결국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며, 허들을 넘었다.
이후 투자 거장들의 포트폴리오를 참고해 종목을 늘려나갔다. 해외주식을 파고들수록 배당주가 내 성향과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보게 된 배당 투자자의 인터뷰로 확신을 얻었다.
장기투자로 안정적인 연배당을 받고 있었다. 부동산은 신경 쓸게 많아 배당주를 선택했다는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29살이 되던 해, 경매 낙찰을 받았다. 산업단지에 위치한 작은 원룸이었다.
세 번의 임대차 계약. 그 세 번째 임차인과 계약을 마무리하며, 다시는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임차인의 계약은 2년. 하지만 그는 6개월 만에 집을 내놨다. 며칠 뒤, 부동산 사장님의 전화가 왔다.
“와서 상태를 한 번 보셔야 할 것 같아. 손님을 데려갔는데 바퀴벌레가 나와서...”
연차를 쓰고 원룸에 찾아갔다.
하얀 벽지에 새카만 곰팡이가 바닥에서 천창까지 번져 있었다. 하지만 곧 곰팡이가 귀여운 수준이었음을 알았다. 방 한가운데 서자, 바퀴벌레 수 십 마리가 하얀 벽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온몸의 털이 경고했다.
툭.
비실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내 운동화 근처에 떨어져 배를 깠다. 본능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 십 마리의 바퀴들이 싱크대 선반과 에어컨 뒤로 몸을 숨겼다.
나는 술래였지만 그것들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달아났다. 원룸은 큰 비용을 치른 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사무실.
계약서를 훑는 원룸 매수자에게 물었다.
“관리 어렵지 않으세요?”
그는 해당 건물의 원룸을 다수 보유한 직장인이었다.
“전 스트레스 잘 안 받아서. 그러려니 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광대와 입꼬리가 솟아 있었다. 원룸을 급하게 처분하느라 수익을 포기한 채 넘겼기 때문이다.
경매 낙찰 이후 두 번째로 매수했던 지방의 소형 아파트. 이 집은 저주받은 게 분명했다. 보일러와 도어록이 순차적으로 고장 났고, 부엌과 욕실의 타일은 딱풀로 붙인 것처럼 떨어졌다. 창문은 금이 가거나 깨졌고, 도배만 하면 벽지가 자아 분열하듯 사방으로 찢어졌다. 나도 분열될 것 같았다.
처분하자.
나는 집이 아닌, 내가 저주받은 게 아닐까 의심했다. 서울은 상승을 거듭하는 반면, 지방 부동산은 하락기가 찾아왔다. 경쟁하듯 헐값에 던져지는 매물, 얼어붙은 거래에 내 시간도 냉동되었다.
각자에게 잘 맞는 투자가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부동산과 상극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유지보수 비용이 커지던 풀옵션 원룸과 달리, 배당성장을 거듭하며 배당금을 차곡차곡 쌓아주던 배당주.
나와 잘 맞는 투자.
등락에 일희일비하며 당장의 손익실현에 집착하던 시절은 처참히 끝났다. 지금은 시세를 매일 들여다보거나 주가와 환율에 연연하지 않는다. 수량을 늘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장기투자.
폭락장이 찾아와도 동요하지 않았다. 주가가 떨어져도 배당은 나왔고, 배당금으로 하락한 주식을 사 모았다.
그럼에도 멘탈이 흔들리면, 신경 끄기에 집중했다. 신경 끄고 살다 보면 어느새 주가는 사춘기를 마친 가출 청소년처럼 제자리를 찾아왔다.
누군가 내게 “주가 폭락했는데 괜찮아요?”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
“그러려니 해요.”
정년이 없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생활비가 필요했다. 일정한 금융소득이 생기면 생계형 일이 아닌, 원하는 일을 하며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월평균 배당금에 물가 상승률을 적용해 100세까지의 생활비를 엑셀로 정리했다. 3년, 5년, 10년, 20년 뒤의 삶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당장 1, 2년은 두려웠지만, 멀리 바라보면 오히려 기대감이 생겼다.
기댈 언덕 하나 없으면, 내가 되어주면 그만이다.
결심했다. 내가 나의 기댈 언덕이 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