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그림자, 그때의 나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내가 얼마나 짓이겨졌는지 나는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몇 년에 걸쳐 일어났던 일이었고 급기야 길 한복판에서도 폭력을 행사했다. 그 뒤엔 항상 눈물을 흘리며 비는 수순이었다.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폭력이 낳은 또 다른 폭력
내가 좋아하는 모든 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술을 너무 좋아했고 취하면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서로가 익숙해질 때쯤 그의 폭력 성향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는 폭력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곧잘 때렸고 그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술로 하루를 버티곤 했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에는 이미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녀의 삶을 알기 전까지 난 그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술이 있어야만 잠이 들었고 술에 취해서는 온갖 주정을 부렸다.
보통의 어머니 모습이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취한 그녀가 그간 꽤 오래 남편에게 맞으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내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 당시 내 어머니보다 더 그녀를 사랑했다. 보듬어주고 싶었고 곁에 있어드리고 싶었다.
그녀 또한 나를 친딸만큼 아꼈다. 아니 때때로 당신의 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듯 보였다.
부모님 앞에서조차 자행되던 폭력
장대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새벽 어느쯤 우리는 한바탕 말다툼을 했다. 그는 나를 끌고 마당에 나왔다. 온 세상이 잠든 새벽, 우리의 언성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당시에도 그는 나를 때렸다. (당시 그의 본가였었는데) 희미하게 그의 부모님이 밖으로 나와 우리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비가 많이 와 흐릿했지만 분명했다.
누구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그것이 더 충격이었다.
쩌렁쩌렁 울려 퍼지던 우리의 언성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채 차를 끌고 번화가로 나갔다. 나는 신발조차 제대로 신고 있지 못했다.
어느 동네인지 모를 곳에 차를 세우고 다시 말다툼을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공포를 느꼈던 거 같다. 맨발인 것도 잊고 차에서 도망쳐 그대로 뛰었다.
하지만 바로 쫓아온 그가 너무 무서워 맨발로 길에 주저앉아 울었다.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눈물인지 비인지 모를 무언가가 내 온몸에 떨어져 내렸다.
너무 무서우면 추운지 아픈지조차 모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비가 오는 데도 나를 질질 끌고 차에 태웠다. 그렇게 연행되듯 나는 다시 그에게 잡혔다.
선명한 폭력의 기억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글을 쓰니 여전히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하여튼 나는 4년간의 폭력을 겨우 빠져나와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헤어진 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방황했다.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 방식으로, 그는 닥치는 대로 여자친구를 바꾸는 방식으로 살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의 전화였다.
사귀던 여자가 아이를 가졌지만,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만약 돌아와 준다면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아득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사이였다.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단 걸 알았지. 그의 전화는 더욱 충격이었다.
나를 지독히도 아프게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폭력을 당했지만 그 또한 나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찔러댔다.
그가 아프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던 것도 같다. 그리고 그가 누군가의 아빠가 된다는 것에도 충격을 받았다.
그 여자의 미래가 끔찍이 안쓰러웠다. 나처럼 맞지는 않을까, 나처럼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지는 않을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는 그 여자와 아기를 책임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온전히 헤어진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