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기 어려운 폭력의 그늘
그와 나는 친구였다. 사람 좋아하고 함께 어울리는 거 좋아하던 끼 많은 둘이었다. 그런 둘이 만나면 좋을 줄 알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가 발생했다.
늘 여자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
노는 것만 좋아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는 노는 것만큼 여자들과도 서슴없이 지냈다. 주변에 늘 여자들이 많았고 때때로 함께 어울려 연락이 두절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포기'를 선택했고, 그때마다 그는 나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잡아두려 했다. 그 방식 중 하나가 '폭력'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유독 날 아끼셨고 그는 나를 놓는 걸 끔찍하게 두려워했다. 그에게 어머니는 가슴을 후벼 파는 존재였을 터였다. 늘 맞기만 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 아버지를 닮은 자신이었다.
그가 원래 폭력적이었는지, 혹은 내가 그를 자극하는 요소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이야기를 하면 늘 흥분했고 물건을 던지거나 벽을 치거나 그조차도 안 되면 나를 때렸다.
나는 왜 그런 그를 4년이나 버텼을까. 그가 처음부터 나를 때렸던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 나는 특별한 존재였다.
제멋대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 방법대로 본인 분야에서는 꽤나 성공을 했기에 그것이 문제 되지 않았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일에 매달렸다.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친구들을 잔뜩 불러 술에 취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과는 너무 다른 나를 만났던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나였다. 당시엔 그랬다.
엄마의 꼭두각시로 살던 나의 과거
나는 전형적인 착한 딸이었다. 30대가 되어서까지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살았다. 저녁 10시 넘어서 집에 들어간 적도 없고 술도 제대로 마셔본 적 없었다.
그냥 입으라는 옷을 입고 하라는 거 하고 살았던 거 같다. 친구도 엄마가 싫어하면 안 만났다. 철저히 착하고 말 잘 듣는 딸로 살았다.
그러다 그를 만났다. 30대 초반이었다. 나는 그를 만나고 변했다. 생애 처음으로 나 스스로 일어서고 싶어졌다. 그는 철저히 스스로 서있는 사람이었다.
극한의 스케줄에도 그는 절대 포기함이 없던 사람이었다. 늘 한계를 극복했고 쑥쑥 성장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경제적 독립을 했다. 더 이상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사는 착한 딸은 될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그 또한 나의 영향을 받아 착실해졌다.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많이 변했다. 그는 나를 만나고 몰라보게 안정되었고 나는 그를 만나고 몰라보게 진취적이 되었다.
그래서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했고 끌렸다. 그것이 서로에게 집착하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의심과 폭력의 일상화
특별하다고 느낄수록 우린 서로에게 집착했다. 나는 그를 의심했고 그는 내게 폭력을 행사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밀며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만큼 그도 아플 것이기에.
암튼 그와 헤어지고 그가 이 여자 저 여자 전전하다가 아이를 가져 결혼하게 되면서 우리 사이는 완전 끝이 났다. 사실 그는 결혼한 뒤로도 내게 연락을 했었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은 적도, 문자에 답을 한 적도 없지만 그의 메시지는 끊임없이 남겨져 있었던 것도 같다.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어, 벌을 받고 산다고 했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한참 후에 아마도 5-6년이 지난 후였을 것이다. 우연히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듣게 되었다. (우리는 친구로 만났기에 그의 소식은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참 많이 울었다. 내 어머니보다 더 사랑하던 그의 어머니였다. 우리가 헤어지고 그의 어머니는 잔뜩 술에 취해 내게 전화를 하셨다.
"OO아 미안해. 내 아들이 너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내 아들과 헤어지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못해. 너는 내 딸이었고 나는 너와 함께 하고 싶었단다.."
그것이 그와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마지막이었다. 독하게 끊어냈다. 살을 도려내는 것만큼이나 아팠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연락이 왔다. "엄마가 돌아가시면서도 너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셨었어.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전해달라셨어"
돌아가시면서까지 며느리도 아닌 아들의 지난 여자친구였던 나를 기억하셨던 분이셨다.
그때가 40을 바라보던 때였던 거 같다.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도 질겼고 나의 청춘은 그렇게도 아프고 아팠다. 나는 어느새 40대 초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