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Between Oceans, 2016
파도가 지나간 자리
The Light Between Oceans, 2016
마이클 패스밴더 / 데릭시엔프랜스
. 반복되는 파도만큼 반복되는 이야기
이 반복은 지겹고 상투적인, 어떤 진부함이 아닌 지극히 당연한 반복이다. 감독 데릭시엔프랜스의 앞선 영화 두 편『블루 발렌타인』부터 『플레이스비욘드더파인즈』, 그리고 『더라이트비트윈오션즈(파도가 지나간 자리)』까지 영화는 인생을 밀고 나가는 여러 장면을 늘어놓는 과정을 통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낸다. 블루 발렌타인에서 우리는 쉴새없이 닥쳐오는 인생의 폭력에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랑의 무력함을 겪었고, 플레이스비욘드더파인즈에서는 그러한 인생 가운데 삶이 있다는 믿음을 품고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을 봤다. 그렇게 또 다시 삼 년이 지나 이제는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조금은 직설적이고 뻔하게, 삶을 삶으로써 살아가게 만드는 기본적인 요소를 언급한다. 그동안 수없이 등장하면서 사실 한 번도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용서'를 말한다. 처음엔 터져나오는 삶을 추스르지 못했고, 다음엔 모든 짐을 이고 인생 속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기로 마음 먹었었다. 이제 그는 인생을 마주해 안도 바깥도 아닌 그 자체를 살아가게 된 인간을 그린다.
. "삶, 난 그거면 돼요."
신이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진실로 물은 남자가 있었다. 수많은 죽음에서 돌아온 남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기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았다.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는 삶을 포기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존재로써 목숨에 대한 빚을 갚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감사할 일이라고는 떠올릴 수 없으나, 저 대신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다만 우리가 삶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단어 안에 포함된 무수히 많은 연결점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존재는 오롯하지 못하다. 파도는 밀려 와 부딪힌 뒤 사라지는 게 아니라 파편되어 다시금 공기를 머금고 새로운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반복되는 매일의 삶은 파도만큼 사실 단 한 번도 같았던 적 없다. 톰이 완연한 고독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삶은 그를 스스로 고독에서 빠져나오도록 만든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점으로 한 자리에 서 있는 듯 했지만 고독에의 '선택'이라는 방향성을 만든다. 점은 이동하여 다른 점을 만나고, 결국 삶의 지점들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있다는 건 늘 선택과 방향, 그 운동으로 다른 점과 부딪혀 만드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유를 명확히 할 수 없는 시간을 영위하게 한다.
단순한 '존재'로서의 삶이면 된다고 말하던 그는 삶이 포함한, 예상치 못한 혹은 잊고 있었던 다른 요소들을 만난다. 이자벨을 통해 삶에 대한 어떤 충동과 마주한다.
. 그가 바다를 바라볼 때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다. 그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르겠고, 어쩌면 밀려오는 삶에 대한 벅찬 감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방향도 의미도 알 수 없는 바다를 비추는 빛을 바라보고 있자면, 자꾸만 지치지도 않고 부딪쳐 오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자면, 먹먹함이 밀려온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인가 싶을 때도 있으나, 이건 그보다 진한, 부서지는 파도 사이에서 차오르는 살아있다는 벅찬 감각이다. 톰이 바다 곁을 지키며 겪는 순간만큼 삶의 감각이, 이자벨에 대한 벅참이 차오른다. 바위에 부딪히는 바다, 파도는 선명한 '존재'의 운동이다.
. 우리는 견디는 대신 사는 것이다
누군가는 버티는 삶을 이야기한다. 버티는 것이 인생은 아니다. 그 자리에 서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참아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반복처럼 보이는 파도의 그 운동이 사실 한 번도 같았던 적 없는 것처럼, 우리는 늘 부딪히며 새로운 물결의 무늬를 만든다. 영화는 내내 묻는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모두를 잃고 혼자 남아 자신의 목숨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삶'을 갈구하던 남자, 연속된 유산으로 삶에 무기력을 느끼는 여자, 우연히 주어진 생명에 눈이 멀어 늘 가슴 졸이며 사는 삶의 불안과 그로 인해 주객이 전도된 그들의 사랑.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말았어야 하는, 자꾸 버티게만 하는 것처럼 느껴질뿐인데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다음이 있다. 삶의 충동으로 우리는 방향을 택한다. 그렇게 외딴 점 사이를 잇고, 서로에게 부딪혀 방향을 바꿔가며 삶은 그저 계속 움직여간다. 그리고 파도는 자국을 남긴다.
.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자국들
사랑이 전복된다. 삶의 진실이 어두워진다. 파도'들'이 지나간 자리에 알 수 없는 공허함만이 남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자벨은 사랑을 포기하려 하고, 톰은 사랑에 목을 매달려한다. 삶에 대한 증오와 삶에 대한 미련없음이 겹친다. 섬의 이름인 야누스, 끝과 시작이기도 한 그 이름은 톰과 이자벨이 사랑 앞에서 극으로 치닫는 모습 그 자체다. 하지만 야누스가 그 양면성을 모두 품은 채 또 바다를 흘려보내듯, 톰과 이자벨도 그렇게 서로에게 부딪히며 사랑을 끌고 간다. 삶에 대한 욕망과 허무로 만난 둘은 그렇게 하나로 섞여 흘러나간다. 살아가게 만드는, 지극한 반복 속에 현재를 만들어 내는 마음이란 결국 관계의 기본적인 요소들뿐이다.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이 단순한 반복은 전혀 단조롭지 않다. 사랑으로 용서로 미움으로 끊임없이 부딪히며 삶은 나아간다. 멈추고 싶다고 멈출 수 있는 것도, 뜨겁게 살아가고 싶다고 뜨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끝없이 부딪힐 뿐.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그 사이로 비추는 불빛 속에 삶의 자국이 남는다. 그 흔적이, 존재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 삶은 빛이 난다. 우리가 지나온 자리가 어떤 궤적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네가 사랑받고 자란다는 사실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실을 기다리는,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의 마음처럼, 삶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당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매일 우리에게 '부딪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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