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자 Nov 07. 2018

베스트 오퍼 : 각자의 최선

Best Offer, 2014

영화 <베스트 오퍼> (2014)

.감독 쥬세페토르나토레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꼬네



- 이게 최선입니까? 최선이에요?

몇 년 전 여자와 남자의 몸이 바뀌는 내용의 시크릿 가든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있었다. 재벌 2세로 백화점을 경영하는 주인공 남자(현빈)는 사람들에게 늘 묻는다. "이게 최선입니까? 최선이에요?" 한 번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영화 속 사랑에 빠진 칠십 대 노인 경매사인 주인공은 비서에게 묻는다. 와이프가, 결혼 생활이 어떻냐고. 비서는 "베스트 오퍼"였는지 알 수 없다고 답한다.


"경매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부른 값이 최선인지 알 수 없죠."


베스트 오퍼, 확신에 가득 찬 최고의 선택을 뜻하는 말 같지만, 사실 늘 의심할 수밖에 없고 평생 그 답을 알 수 없는 물음과 같은 말.

영화가 준 베스트 오퍼는 뭐였을까.


- 두 번째

이전에 혼자 한 번 보고는 '좋다, 반전을 대하는 방식이 묵직해' 생각했다. 스펙터클하지도 소름 끼치고 강렬한 반전도 아니었지만 충분히 이런 반전일 수 있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뻔하다며 꺼버리지 않게 만들었던 장치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묵직한 한 방. 반전을 마주한 뒤 천천히 스미는 씁쓸함에 크게 놀랄 수도, 소란을 떨 수도 없다. 존재의 변화 자체가 돋보이는 영화여서, 그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개별적으로도 잘만 각자의 이야기가 되어주어서 그들이 하나로 읽히자 나는 더욱 조용히 크레디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애인과 함께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베스트 오퍼'에 닿았고, 나는 '캐리비안의 해적!'하고 본 적 있느냐 물었다. (주인공인 제프리 러쉬는 캐리비안의 해적 바르보사 선장 역으로 아마 가장 유명하겠지!) 본 적은 없지만 보고 싶었다는 말에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반전을 알고서 깔끔한 연출의 이 영화가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괜찮을 거였다. 다만 입이 간지러울까 봐 걱정을 했는데, 막상 옆에서 딴 소리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반전을 계산하지 않아도 영화를 이루는 인물들의 상호작용 그 자체로 괜찮은 영화였다.


- 각자의 최선

세계적인 미술 작품 감정인이자 경매사지만 여자와는 눈맞춤은 커녕 그쪽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남자 주인공 버질과 그의 경매 사기 파트너로 함께 일하지만 그런 친구에게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화가가 있다. 이미 주름 질 대로 진 나이를 먹은 버질은 여성의 초상화만 모으는 괴벽이 있는데, 현실의 여자와는 대화 한 마디 나누지 못하고 제대로 된 관계도 가진 적 없다. 영화가 그의 변태성에 초점을 조금이라도 더 맞추었다면 소름 끼치는 영화로 시작되었겠지만, 이 해괴한 수집벽은 그의 직업과 맞물리며 새로운 사건으로 이어진다.

버질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는 대인 공포증 여자의 유산 감정을 하게 되고 벽 너머 실제하지만 실제하지 않는 듯한 그녀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긴다. 초상화 속 인물에만 애정을 쏟는 인간에게 나타난 얼굴 없는 이성, 그는 관계에 필요한 무언가 '부재'한 상대에게 느끼는 신기루 같은 감정에 빠져든다. 그런 그와는 반대로 모든 여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젊고 잘생긴 기술자는 주인공이 그 여자의 오래된 저택에서 모아온 부속품들의 조각을 맞춘다. 주인공은 조각들만 부분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었고, 기술자가 짜맞춰가는 오래된 기계에도 점점 빠져든다. 그러니 해답은 그렇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젊은 기술자가 보여주는 만큼만 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제대로 보는 것은 없었다.

이미 만들어진 연극 공연장 속에 들어와 있을 뿐이었으니 영화 속 장치가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마지막 순간에 더 하고 싶은 말이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베스트 오퍼

버질은 경찰서 앞까지 찾아가고도 그의 작품을 모두 훔쳐 간 여자(젊은 기술자와 화가 친구 또한)를 신고하지 못한다. 그건 당연히, 사랑했던 여자를 신고하는 순간 자신의 사랑이 위조되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셈이니까. 다만 그의 초상화들은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가장 큰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것' 혹은 '진짜 사랑'이었다. 그것과 인생 최고의 감정을 누린 기억을 맞바꾼 것이 못할 선택도 아니지 않은가. 버질이 느낀 사랑은 진짜였고, 평생 그 열렬함 한 번 느끼지 못하던 때로 돌아가기에는 그 기억이 너무도 강렬했던 거라.


"위조 작품 속에는 항상 진품의 면모가 감추어져 있다."


진품과 가품을 가리는 감정사는 조작된 드라마에 넘어간다. 다만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정한 이에게 위조 여부가 중요할까. 베스트 오퍼란 본인이 지불하겠다고 한 만큼의 값이다. 일상 속 우리가 마주하는 일반의 감정을 해석해 결정을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불한 값, 혹은 만약에 라는 물음에 대해 영원히 확신할 수 없다. '가치'의 무게를 정하는 건 그 다음의 인생을 짊어질 본인 선택의 문제다. 아이러니하게도 진품만을 한가득 짊어지고 살아온 그에게 남은 것은 조작된 사기뿐이었지만 그는 그 안에서 진정한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제되고 완벽한 것을 쫓는 장엄하고도 답답한 평생을 지나.

엄청난 값을 속아서 치른 반전이 묵직하게 느껴졌던 게 아니라, 누군가가 온 힘을 다해 선택한 결과를 지켜본 마음이 먹먹할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견디는 대신 사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