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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Mar 13. 2018

더 포스트 : 오롯이 당신의 목소리로

The Post, 2017

"뉴스는 역사의 초고."


. 오늘의 우리


자주 잊는 것은 우리에게 결정을 감행할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좁아지고 내 손 닿을 수 있는 문제가 늘어날 수록 우리는 이전보다 많은 선택권을 부여 받는다. 그 중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 최고 결정권자가 아니거나, 굳이 판단 내리지 않아도 이내 나를 스쳐지나간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기회가 늘어나는 만큼 결정할 일도 늘어나지만 분명 개인에게 주어지기엔 버거운 수준이다. 더이상 우리가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기란 쉽지 않다. 기회비용이 기회보다 비대해지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렇게 얼마나 많은 일을 못 본 체 하며 매 순간을 살았는지.



. The Washington Post 워싱턴 포스트


1971년 뉴욕 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로 지난 30년 간 미 정부가 감춰온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온갖 조작과 거짓말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정부가 뉴욕타임즈를 기소하고 난 뒤, 더포스트의 사주 캐서린과 편집국장 벤의 손에 달린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다룬 영화. 언론을 다룬 영화 중 참 예쁜 영화인데, 그건 아마도 영화가 사건 속에서 선택한 조각을 따라 달라진 분위기 탓이다. 사건의 전말을 극적으로 만드는 대신 삶에 초점을 맞추어 '현재를 만든 이'들과 '현재에 사는 이'들을 한데 묶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당신이 뜨거워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 일


누군가 당신의 결정을 대신하도록 둘 수는 있을 지 모르겠으나, 매 순간 찾아드는 감정은 스스로의 견딜 몫이다. 『더 포스트』는 정의와 양심,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선택을 시작한 이들의 순간을 포착한다. 역사적 순간을 마주하는 일은 가슴 벅차다. 우리가 영화의 역사적 순간에 그들이 그러하리라는 걸 알고도 미간을 찌푸리고 손에 땀을 쥐는 이유는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영화는 군더더기를 걷어내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한다. 정성을 다하는 이들의 작업이 늘 그렇듯, 연출방식과 주제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캐서린이 내리게 될 결정만을 놓고 숱한 고민의 시간을 함께한다. 그녀의 결정에 영화가 담아낸 모든 대화의 끝이 있고, 영상은 순간의 탄성과 눈길만을 얻기 위한 장치와 스케일을 억지로 더하지 않는다. 결정은 순간은 단순하다. 이해관계가 얽힌 모든 요소들과 격렬했던 마음의 떨림, 혼란이 정리된 자리에 오롯한 본인만 남는 것이다. 절제된 연출과 단순한 스토리라인이 증명하듯.





.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금기시 되고, 모두가 죽음의 비루함에서 달아나려 하지만 죽음은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이 머무는 자리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타인의 용기가 쌓은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버지와 남편이 기업을 꾸리는 동안 사교계에서 활동하던 캐서린은 그들의 죽음으로 한 순간에 드레스나 다과, 플라워데코레이션이 아닌 기업 경영권을 놓고 씨름하게 된다. 처음엔 그녀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는 일이, 옳은 일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의 거짓말을 밝히는 것보단 아버지가 일군 회사를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과 오랜 친구를 고발하지 않는 일이 옳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하게 보이는 건 당신이 사랑한 이들의, 사랑하는 이들이 진실로 지키고자 했던 정의의 방향이다. 사랑은 켜켜이 쌓여온 시간을 넘어 몇 번이고 이곳에 도착한다. 우리가 옳은 결정을 내릴 용기를 갖도록.



. 당신의 결정이 역사의 초고


캐서린이 벤에게 말한다. 아버지가 "뉴스는 역사의 초고"라 하셨다고.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래된 시간들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옳은 결정이 지은 이 땅을 밟으며 역사가 된 순간들을 되짚는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지만, 역사를 만드는 결정은 오롯이 당신의 마음 끝자락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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