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에 처음 취업했을 땐 옷을 엄청 샀다. 매일 새 옷을 입었고 집으로 택배가 매일 같이 왔다. 또 택배 왔다는 가족의 말에 무안했고 딱 그 개수만큼 나는 불행해 보였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대신 옷을 사는 게 내가 바라는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만두고 책을 만들었다.
2017년에 다시 직장생활을 할 때 일은 조금 더 편했지만 돈 쓰는 거 말고 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괴짜 같은 취미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잘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조용한 방에서 자기만의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2017년 말에 어깨너머 동냥한 취미 생활이 음악 듣는 일이었다. 나보다 네다섯 살 많은 그들의 고상한 취미를 알면 알수록 새로운 세계로 편입하는 기분에 즐거웠다. 싸구려 이어폰으로도 그럭저럭 살아가던 내가 해외직구로 스피커를 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턴테이블을 샀다. 회현 지하상가에서 절판된 변진섭 1, 2집을 구해왔다. 매달 통장에 그럴듯한 액수의 돈이 들어와서 원 없이 음반을 샀다.
2018년에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사람도 취미가 되나요? 그 사람이 틀어주는 음악이 그대로 내 취향이 되는 시절이었다. 감성적이고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나와 다르게 과묵하고 무던한 그 사람, 일곱 살의 나이 차이만큼 다른 음악을 들었고 그 다름을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음반이 가진 스토리, 브랜드가 가진 역사와 의미 같은 것들을 듣고 있으면 내가 조금 더 선명한 세상을 사는 기분이 들었다.
2019년에 그와 헤어진 뒤에 그가 갖고 있던 음반이 다시 한번 한정판으로 재발매가 된다는 소식에 예약 구매까지 했지만 잘 꺼내보진 않았다. 내 손에 쥐어도 내 것 같진 않았다. 그 앨범이 꼭 그 사람 같기도 했다. 그가 주고 간 것을 자유롭게 즐긴다는 말을 할 순 없을 것 같았다.
2020년에는 그가 돌아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아마 몇 번을 헤어져도 다시 내 앞에 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면 나는 몇 번이고 사랑에 빠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와의 또 다른 끝은 전보다도 뜨뜻미지근했지만, 지난 시간의 속박도 함께 느슨해졌다. 그림자는 사라지고 나는 이제 이 노래가 남의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