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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Jan 05. 2022

지나간 것을 대하는 방식

<오늘보다 더 사랑할 수 없는> 수록글

"밤에 침대에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


개그맨 홍진경은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 일이 있다. 똑같은 영화가 하루는 날 울리고 하루는 날 웃기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마음의 일이다. 영화가 아니라, 그날의 대화가 아니라 늘 내 것인 내 마음이 항상 움직이며 날 울리고 웃긴다.


침대에 누워 한 시간이 넘도록 잠들지 못한다. 수면 아래 깊숙한 곳에 담가도 자꾸만 둥실 떠오르는 마음탓이다. 오른팔 이야기를 하는 건 이제 아주 지루한 일이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오른팔을 신경 쓰는 날은 점점 늘어난다. 잠들기 전 내일 운동 내용이 적힌 학원의 공지를 확인한다. 생소한 동작을 유투브에 검색하고 외국인 트레이너가 보여주는 자세를 따라 하며 내 어깨가 허락할지를 고민한다.


어깨를 다치는 상상은 오랜 트라우마다. 관절이 어긋나는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은 이제 겪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침대에 누워 불편한 미래의 고통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밤. 왜 오래도록 치료를 미루며 살아왔나 한탄하고, 원인을 제공했던 어린 시절의 그 남자아이를 미워하며 옛날부터 했던 생각을 반복하는 밤. 이미 탓할 만큼 탓했고, 이미 한참을 지나온 일을 똑같이 탓하고 슬퍼하는 이상한 마음이 내 것이다.


밤에 침대에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누리기 위해. 한 번 미워한 것을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미워하지 말고, 이미 탓한 대상을 같은 일로 다시 탓하지 말고, 이미 고민한 것을 똑같은 이유로 다시 고민하지 않을 것. 지난 괴로움이 제 발로 다시 찾아오지 않는데 스스로 상자를 열어 그 뒷덜미를 쓰다듬는 습관을 버릴 것. 다가오지 않은 것을 무서워하지 않도록, 그 자리를 채우려 다가오는 것들을 밀어내지 않도록.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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