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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육휴중 Nov 23. 2020

퇴사에 대한 글을 쓰다가 갑자기, 퇴사를 실행했다(2)

14년 만에 첫 백수 라이프,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8 

운이 좋게도 나는 경력단절이 거의 없었다.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방송국에 구성작가로 취업이 확정되었고, 방송국을 그만두었을 때도 작가 선배와의 인연으로 디자인 기업으로 운 좋게 이직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디자인 기획자로서의 경력에서도 이력서를 쓰거나 취업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던 적이 거의 없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 IMF 세대이며, 취업난과 공시족 100만 시대를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내게 주어졌던 많은 선택지들은 언제나 감사의 제목들이다. 국문학 전공을 살려 글밥을 먹고살았고, 글밥을 먹고살면서도 디자인 기획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자연스레 적응할 수 있었고, 브랜딩이나 제품 디자인, 마케팅 분야에서도 내가 공부해왔던 스토리텔링을 적용하여 일을 할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청춘들이 대학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이 사회에서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 그럭저럭 성공한 인생이었다.  


#9

회사를 옮겨가는 시점에서도 쉬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이직을 계획하면 거의 1주일 뒤에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했다. 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퇴사를 하게 되면 진하게 쉬어보리라 생각했다. 퇴직금도 어느 정도 있었고, 그동안 모아둔 돈도 있어 6개월 정도는 거뜬히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직장인으로서 14년이 넘는 시간. 나름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했고, 다양한 클라이언트들과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녀를 얻었다. 휴가 때마다 해외를 경험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할 여유도 있었다. 일은 내 삶이었고, 다시 뛰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퇴사를 결정하게 된 건 14년이 넘는 시간, 이제 삶에 잠시 쉼표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번아웃은 아니었다. 번아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10 

7월 말에 퇴사를 했으니 글을 쓰는 기준으로 이제 4개월이 지났다. 삶의 쉼표가 되어주길 바라고 거창하게 실행했던 나의 퇴사의 첫 목표는 달성한 것 같다. 오랜만의 쉼이었다. 여유로운 마음이었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퇴사를 하고 첫 한 달은 거의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했다. 딸아이의 어린이집 등 하원을 맡아서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놀이터로 나가 함께 놀아주었다. 놀이터에서 밝게 웃는 모습이 좋았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뛰어와 나에게 안길 때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아이가 내 곁에서 커가는 모습을 집중해서 볼 수 있다는 건, 늦은 저녁 퇴근하고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별생각 없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11 

혼자만의 시간도 많아져서 구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기도 했다. 가벼운 수필집에서부터 자기 계발서, 환경 관련 서적까지 도서관에서 부담 없이 책을 빌려왔다. 물론 읽지 않고 반납일에 쫓겨 그대로 돌려준 책도 많다. 넷플릭스에 가입해 다양한 콘텐츠를 보기도 했다. 통신 요금제를 변경해 차액만큼 넷플릭스에 투자했다. 넷플릭스의 다양한 콘텐츠들은 한동안 넷플릭스 예찬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특히 그동안 벼르기만 하고 보지 못했던 미드들도 한 번에 몰아보기도 했다. 오래된 영화와 드라마도 다시 보았다. 선뜻 나에게 '쉼'을 동의해준 아내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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