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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육휴중 Sep 01. 2021

내가 창업을 하면서
투잡을 하게 된 이유

오랜만에 쓰는 브런치, 꾸준하지 못했던 글쓰기에 대한 비루한 반성문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기게 됩니다. 브런치에는 아주 오래전에 직장생활과 이직, 퇴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고자 가입을 했었습니다. 한 번의 글을 쓰고 한참을 쉬고, 그리고 몇 번의 글을 작성했습니다. 지웠다가 올리지 않은 글도 있고,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글도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게으름이고, 그것에 대한 작은 변명을 하자면, 그동안 제가 투잡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편집디자인 분야에서 디자인 기획자로 15년 가까운 경력을 쌓아왔습니다. 매거진, 브로슈어, 대학 홍보, 기업 홍보물에서부터 CI, BI. 패키지 디자인, 디자인 컨설팅까지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경험이라 하고 수많은 잡일이라 해석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경력을 뒤로하고 벤처기업에 관심을 두고 제조와 마케팅, 디자인을 겸하고 있는 벤처기업에 이직을 했습니다. 다니고 있던 디자인 회사가 코로나19로 많이 어렵기도 했고, 약간의 번아웃이 찾아온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데스벨리에 있는 3~7년 차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디자인 컨설팅을 하러 다닌 적이 있습니다. 서울, 경기, 수원, 광주, 천안... 그때 벤처기업에 대한 환상이 약간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벤처 기업의 맛을 한번 보고자 하는 의도로 입사지원을 했는데, 저의 화려한(?) 경력을 보시고 그곳에서는 쉽게 결정을 내려주셨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지독한(?) 벤처의 맛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독한 벤처의 맛이라고 표현했는데, 벤처기업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부분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유연한 직급체계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진취적인 목표들, 성장 가능성... 하지만 그와 반대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 많은 것이 벤처기업이었습니다. 대표자는 실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솔직히 너무 무지, 아니 무식했습니다) 우격다짐 식의 업무 진행이었습니다. 체계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20대였으며 이직률이 높았습니다. 업무 인수인계는 없었으며, 모든 프로젝트를 혼자서 진행해야 했습니다. 모 국립 전시관의 개관 전시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기획에서 진행까지 모든 분야를 혼자서 진행했으니 말 다했죠. 


거기에 가장 치명타는 통근시간이었습니다. 걷고 지하철 타고 이래저래 하면 1시간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치명타였습니다. 그 벤처기업은 퇴근시간이 6시 반이었는데, 칼퇴해서 집에 도착하면 7시 반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업무일지를 시간 단위로 작성했었는데 남아서 업무일지를 정리하다 보면 퇴근시간은 점점 늦에지 게 됩니다. 그때 아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저녁이 없는 삶'은 너무나도 가혹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퇴사는 당연한 결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퇴사를 고민하면서 아내와 많은 상의를 했습니다. 업무 중에 카톡으로 이런저런 고충을 이야기하던 중에 아내는 선뜻 "걱정 말고 퇴사해"라는 말을 해주었고, 그리고 그동안 일만 하고 살았으니 몇 달 쉬면서 아이의 어린이집 등 하원도 도와주고, 함께 놀이터에서도 놀아주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회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저런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당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보는 게 좋겠어. 쉬면서 그것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퇴사를 했습니다. 맡고 있던 프로젝트도 거의 끝났고, 다른 직원에 비해 연봉이 높았던 터라 회사에서는 바로 퇴사를 결정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입사도 퇴사도 정말 빠르게 결정해주셨던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 너무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프로이직러로서 이직을 정말 많이 했지만 공백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로 다음 회사에 출근을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몇 달 간이 었습니다. 쉬면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도 있었고, 살림살이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선물 같은 시간을 준 아내와 전 직장에 감사한 마음이 많습니다. 


2020년 8월에 퇴사를 하고, 두어 달을 쉬면서 10월에 창업을 위한 정부지원사업에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 발표가 12월 이후로 늦어지게 되면서 예상외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고, 일을 하지 못하는 금단현상이 생긴 걸까요? 알바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제안서 작성 및 프레젠테이션 제작' 업무를 하는 프리랜서 자리가 있어 이력서를 냈습니다. 물론 벤처기업이었지요. 그런데 그곳과의 면접 자리에서 갑자기 전략기획 실장 자리를 제안하셨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할 생각으로 찾아갔는데 정규직을 제안하셨던 거죠. 


고민이 되었습니다. 전략기획 실장이라면 회사에서 기대하는 것이 어떤 부분인지, 어떤 무게인지 지난 사회경험을 토대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대신 제가 다시 제안을 했습니다 10시 출근 4시 출근이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연봉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었습니다. 그래도 만족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가장 우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해가 바뀌어 1월이 되고 정부지원사업에 뽑히게 되어 창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이부 부분에 대해 상의를 드렸더니 월, 수, 금 3일을 출근하여 회사 업무를 하고, 화목 이틀은 저의 회사를 만드는 데 시간을 쓸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투잡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회사일은 월, 수, 금 상관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습니다. 밤늦게 아이를 재워놓고 작업해야 하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월, 수, 금은 회사, 화, 목은 창업으로 정확하게 딱 분리되어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여담이지만 벤처기업이다 보니 받을 수 있는 정부/기관 지원사업은 죄다 어플라이 하다 보니 어느덧 제 자신이 지원사업의 달인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초기 창업패키지, 비대면 서비스 지원사업,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사업을 세 개 다 지원해서 세 개 다 서류통과 및 발표까지 통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중복지원에 대한 이슈가 있어 초기 창업패키지만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바탕으로 창업 컨설팅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내가 겪었던 모든 경험들이 오늘의 내가 가진 자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육성사업은 어느덧 1년 사업 중 후반부를 맞이 하게 되었고, 다니던 회사에서 맡은 중요한 프로젝트는 거의 마무리했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될지 아닐지를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창업은 법인 설립과 사업자등록을 마쳤습니다.  힘든 때도 많았는데 역시 그 말이 진리인가 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다니던 회사는 그만두게 될지는 몰라도 투잡러의 삶은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법인이 제대로 설 때까지는 다양한 일들을 부수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브런치에도 이런저런 글들을 많이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겪었던 창업과정과 창업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제가 만들고 있는 스몰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도 차차 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종종 브런치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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