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의 커피 취향 탐색하기
휴직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침 커피도 회사가 아닌 집에서 먹게 되었다. 이왕이면 맛있게 먹고 싶어서 드립 세트를 갖추었다. 역시 회사에서 먹는 캡슐커피보다, 회사 로비의 정체 모를 카페의 아메리카노보다 맛있다.
따로 홈카페를 세팅한 것은 아니고, 주방 조리대 위에 관련 장비들을 쭉 펼쳤다가 정리한다. 꽤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으니 그것마저도 좋은 루틴이 된다. 펼치고, 내리고, 정리하는데 15분 정도 소요된다.
원래 커피에 관심이 있어 가끔 혼자서 드립을 내려먹기도 했지만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휴직하고 커피 관련 책도 빌려보고, 3월에 집 근처 핸드드립 원데이 클래스도 들었다. 하루지만 그래도 전문가에게 배우니 내려먹는 재미가 있다.
집에서 마시면 좋은 것은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싸게 한잔을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원두도 더 좋은 것으로 고를 수 있다. 그래서 원두도 이것저것 주문해서 먹어본다. 그러다 보면 역시 나는 산미 있는 원두가 입에 맞다는 생각을 한다.
커피의 취향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어서, 내가 산미 있는 원두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고소한 원두보다 더 우월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 안에서 판단한 것이고, 각자의 취향일 뿐이다. 게이샤라든가, 마타리라든가, 루왁이라든가 그런 고급 원두를 제대로 먹어본다면 또 바뀔지도 모른다. 단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싱글오리진이나 다양한 카페의 블랜딩 커피를 먹어보면서 역시 산미 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셨을 때 더 맛있다고 느꼈을 뿐이다.
취향은 일종의 루틴처럼 결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여준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요즘은 원두를 고를 수 있는 카페도 흔하다. 대체로 고소한 원두, 산미 있는 원두 두 가지 정도로 제공하는 곳이 많다. 그런 곳에서 아내는 늘 고소한 원두를 고르고, 나는 산미 있는 원두를 고른다. 우리에게 심플한 선택이다.
선택할 것이 많은 환경은 에너지를 뺏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평소 본인의 취향을 많이 탐구해 둔다면 불시에 맞이하는 선택의 상황에서 조금 더 쉽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아낀 에너지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새로운 것들을 하기가 싫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활동들, 새로운 곳으로 가는 여행, 원래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너무 하기 싫었다. 바뀐 부서에서 새로운 자극들이 너무 많았다. 사무실 이사도 너무 자주 했고, 새로운 일도 너무 자주 받았다. 그런 환경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에너지를 뺏어가는 것들이었고, 그것들로 인해 회사 밖의 내 삶에 필요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휴직을 하니 그런 것들도 돌아보게 된다.
휴직을 하고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하지만 뭔가 '일에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혹은 '돈이 되는' 그런 일들을 준비하는데 지쳐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의미 없어 보여도', '돈이 안 되는' 그런 일이어도 그런 일들이 내 취향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시간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