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 공감과 지지를 받는,

오늘의 나는 별로였다

by badac

조지아 항공권을 취소했다. 카타르 항공에서는 9월까지 예약한 항공편에 한해 무료로 날짜를 변경해주거나 예약한 날짜로부터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여행바우처를 준다고 한다. 여행바우처는 현재 금액에 10%를 더 쳐준다고 하는데 언제 어떻게 여행을 가게 될지 알 수 없으니 그냥 환불 신청을 했다. 환불수수료가 얼마가 나올지 모르겠다. 그래도 전에 확인했을 땐 코로나랑 상관없이 환불하면 40만원 정도가 환불수수료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바로 처리되어 금액이 보이지 않고 접수되었다는 등록번호만 받았다. 다른 사람들 후기를 보니 20-30만원 정도라고 하는 거 같은데, 카드 승인이 취소되어 봐야 얼마인지 알 수 있겠지. 친구들과 여행을 가자고 정하고는 2월에 휴가신청서도 미리 쓰고, 비행기표도 미리 샀다. 나만 부지런하게 제일 먼저. 그리고는 이렇게 취소 수수료만 날리게 생겼다. 여행을 가자고 옆에서 부추긴 친구는 미안하다며 취소수수료를 같이 부담하자고 한다. 안 될 소리. 그리고 눈꼽만큼도 친구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그냥 여행을 가지 못한 게 아쉽고 취소수수료가 나오면 운도 참 없다 하고 속상할 뿐이다. 같이 가자고 말했다는 이유로 그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는데 어쩌다가 사랑스런 내 친구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내가 어제 너무 돈돈 거리는 글을 써서 그런가) 나는 그런 상황이라면 머쓱할 순 있겠지만 빈말로라도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게 되었지만 내 잘못은 아니니까. 하긴 빈말을 할 사람이라면 그런 말도 하지 않겠지. (친구야, 진짜 괜찮다!)

어제 글을 쓰고 울컥 올라오는 감정이 무엇이었을까. 좋아하는 글쓰기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글의 흐름이나 구성이 좋은 글은 아닌 거 같은데 쓰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어요. 한번 읽어주세요.” 한 달에 한번 있는 글모임을 이끄는 선생님은 우리가 쓴 글을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읽어주신다. 모임에 제대로 나가지도 않으면서 읽어달라고만 하는 게 이기적으로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어리광을 부리고 관심을 받고 공감을 받고 싶었나봐. 아, 또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하네. 마음 편히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 공감과 지지를 받는 안전하고 고마운 사람이 그리운 거구나. 취소 수수료를 같이 부담하고 싶다고 했던 내 친구는 내 어려움에 공감하는 마음이 그만큼 큰 거였을까. 나는 사랑하면서도 마음을 줄 때 늘 계산한다. 돈계산이랑 본전생각.따지고 보면 같이 글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고 그립지만 모임까지 가는 시간과 에너지, 모임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함께 읽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겠지.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한테만 사랑받고 싶어서 모임에는 안 가고 따로 이렇게 연락하는 거다. 와, 진짜 이기적이네. 아니면 이런 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좋기는 진짜 좋은데 정말 일어나기 싫어서 매일아침 겨우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것처럼 좋은 것과 싫은 것이 동시에 있을 때 좋은 게 싫은 걸 넘어서는 때와 좋을 게 분명하지만 결국은 그러지 못할 때. 모임에 귀찮아서 못 갔으면 좋은 것도 포기해야 하는데 얍삽하게 남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나만 생각한다. 아, 나 쫌 별로네. 선생님! 제가 별로였으면 제 글을 읽고 어떻게 읽었는지 말해주지 마세요, 제 버릇 좀 고치게요. 그래도 다정한 선생님은 ‘독자 입장에서는 울컥할 것 없는 글인데요. 글쓴이의 복잡한 마음을 다독이는 것처럼 느껴져요’라고 말해주셨다. 아, 좋은 사람. 울컥한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천천히 더 잘 들여다볼게요.

요며칠 회사에서 컨디션이 굉장히 좋지 않아서 늘 인상을 쓰고 있거나, 생각과 달리 말이 너무 거칠게 나간다. 나무라는 듯이 말하고, 따져 묻고, 험한 말을 쓴다. 비겁한 사람답게 모두한테 그러지는 않고 친한 사람들한테만. 그리고는 바로 아차 싶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한 줄 알면 하지 말아야지, 긴장도 하지 않고 조심도 안 하면서 말 끝나고 죄송해요만 하면 다인가. 별 것도 아닌 일에 사소한 나쁜 행동들을 하고서는 말끝마다 미안하다고. 죄송하다는 말좀 그만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오늘의 나는 별로였다. 그럴 땐 말을 줄이고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면서 주변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말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청바지 한 번 직접 사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