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완주행보

직장인의 다짐

완주행보_完州行步 10

by badac

많이 놀았다 아이가

완주로 내려오기 전엔 방에 누워서 생각, 또 생각을 했다.

발리 생활을 접고 돌아왔다. 이제 내가 취할 수 있는 다음은 무엇일까. 아마도 다시 직장인이 되는 것뿐일 거다. 돌아다니며 사는 건 여전히 재미있고 그동안 했던 것처럼 전국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면서 놀고 시간을 보내면서 살 수는 있다. 그렇지만 필요한 만큼 돈을 벌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돈을 쓰면서 살 수는 없다.


전에도 늘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지만 요사이 불안은 더 깊고 길게 자주 찾아왔다. 이제 그만해야 할 때다. 직장을 다닐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서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대안 직업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듯이 사는 것도 직업이 되니 지겨워진 모양이다.

10_01.jpg 집을 이고 다니는 생활은 헛헛한 게 사실

내게 맞는 일자리 찾기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일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방에 누워 구직사이트를 둘러본다.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한 또래의 친구들은 관리자급인데 나는 이 나이에 경력도 들쑥날쑥 이고 공백도 길어서 낼 데가 마땅치 않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고 그나마 내고 싶은 자리는 아무래도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을 선호할 것 같다. 해볼 만하다 싶으면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신포도, 뽑아준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나 복잡하게 서류를 준비해서 들어가도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다.


배가 덜 고팠구먼! 맞다. 고맙게도 당장은 가족에게 신세 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조금은 안다. 긴 시간 놀면서 더 잘 알게 되었고 바로 보게 되었다. 내키지 않는 자리로 들어가게 된들 금세 또 괴로워질 테니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무의식 중에 이러고 있는 것 같다. 겨우 찾아낸 몇 건의 구인 광고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지원서 쓰기를 주저주저한 채 시간을 보냈다. 지원 메일을 다 작성해놓고 보내기 버튼 앞에서 멈춘 적도 있다.


지원 동기

돈이 필요하니까, 이제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건 다시 직장인이 되는 것뿐이니까, 그런데 정녕 다시 직장인이 되는 수밖에는 없는 걸까. 매일 아침 사람 가득한 지하철을 타고 종종 걸음으로 집과 회사를 오가는 일을 해낼 자신이 아무래도 없다. 입사 지원서를 내는 일조차 이렇게 내키지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업무를 제대로 해낼 리가. 이제 나는 그럴 재능이 사라진 사람이 아닐까. 게다가 언제부턴가 서울에만 오면 공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지기까지 한다.


위의 것들 중 한 두개라도 피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은 선택일 것이다. 경기도의 일자리를 선배에게 소개받았다. 적당히 느슨하고 아는 사람들이 있는 회사. 이제 노는 것도 지겨워졌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평소 좋아하는 선배가 있는 회사다. 그런데 잘 안됐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건 아니니까.


향후 계획

너무 오랜만이라 취업 시장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있는 걸까. 그나마 길 위의 오랜 백수 생활에 이력이 나서 인지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자마자 일하지 못하는 상황에 조바심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무기력할 뿐.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게 맞는 일자리를 찾으면 좋겠다. 다시 직장인이 된다면 놀 때 직업인으로 성실히 논 것처럼, 적당히 일하면서 업무와 업무 이외의 나를 잘 구분해 가늘게 오래가도록 해봐야겠다.


여유 없이 쏟아붓는 몰입은 숨 막히다. 습관적으로, 배운 대로,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고 싶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직장생활이 늘 괴로웠다. 다행히 마지막 퇴사를 하던 때보다는 성숙한 인간이 된 거 같다. 업무를 잘 보는 일등 사원이 되겠다는 욕심은 없다. 일할 때는 성실하게 임하되 스스로를 닦달하지 말자, 대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그 정도면 된다. 대신 어디서건 좋은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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