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이지, 일터는 일터일뿐.
매일 일기 쓰기 약속을 두 번만 더 지키면 되는데 지각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왔다. 내일부터 연휴라서 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낙이라도 없으면 정말 무슨 낙으로 살아. 그래도 쓰는 근육이 붙었는지 쓰지 말고 그냥 누워서 잘까 하는 마음을 누르고 책상에 앉으니 또 이렇게 몇 문장이라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연휴 전날이라 슬렁슬렁 일했다. 마음이 많이 떠나버려서 지원사업 신청서에 직업이나 소속을 쓰고 그걸 심사에 반영하자는 상사의 말을 하마터면 들어줄 뻔했다. 아직 나처럼 다 놓아버리지 않은 동료가 그건 너무 이상하다고 지적해주어서 다른 방식으로 기존 활동을 서술하는 자기소개 항목을 넣었다. 번번이 이런 식이라 문제제기도 피곤하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심지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면서, 일상의 차별과 배제에 대한 감수성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노력하는 줄 알고 보이는 대로 ‘가르쳐’ 주었는데, ‘어린 사람의 문제 제기도 쿨하게 들어주는 나’의 모습으로만 소비하고 동의하지도 변화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가부장제 전복을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뒤에 숨은 뜻이 더 있는 줄 알고 기다리고 애써 이해하고 해석해보려고 했다. 역시 이번에도 내가 과대평가하고 내가 기대하고 내가 착각한 거였다. 시민단체는, 사회적기업은 평등하고 합리적이고 정의롭겠지.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일하는 것, 여성이 리더인 건 다르겠지? 기대하고 실망하고 또 기대하고 학을 뗀다. 내 잘못이지, 일터는 일터일뿐.
처음으로 다녔던 회사의 이상한 사내 문화는 막내 사원이 아침마다 부장님과 팀장님의 커피를 취향대로 타다 갖다 책상 위에 놓고 것이었다. 팀은 전원 여성이었고 점심시간은 주3일은 도시락, 주2일은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나는 그게 너무 이상해서 도시락 싸오고 싶은 날 도시락을 쌌다. 아파서 조퇴하면 아프지 않게 자기 관리를 하는 게 업무능력이라고 말하는 회사였다. 관성적으로 그냥 하는 일의 사회적 의미, 개인적 성취조차 전혀 알 수 없어서 10개월인가 11개월인가만에 나왔다. 한 달만 더 다니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그 한 달을 견딜 힘조차 없었다. 이직을 준비하던 비영리단체에 합격해서 바로 출근했다. 그렇게 기대하던 곳이었지만 역시 금방 다니기 싫어졌다. 그때를 떠올려 뭐가 그렇게 싫었는지 생각해보니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잘하지 못하는 경리업무까지 봐야해서 과부하가 걸렸던 것 같다. 쓸데없어 보이는 행정서류를 수도 없이 만들어야 해서 프린터를 차에 싣고 출퇴근하면서 집에서도 일하고 밤을 새는 것도 일쑤였다. 사업계약이 끝나고 재위탁이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만 두었다. 그때도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적절하지 못한 인물이 리더였다. 그래도 팀장님과는 사이도 좋고 호흡도 잘 맞아서 지금까지도 좋은 사이로 지낸다. 그 뒤로 다녔던 비영리조직에서도, 사회적기업에서도 대외적으로 말하는 사회적 가치와 실제 조직 내의 문화나 운영시스템의 괴리 때문에 힘들었다. 왜 밖으로 말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일하는 데에서는 실천하거나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을까. 돈 주는 곳, 일 주는 곳, 감시기관에서 해달라는 대로 다 하면서 어떻게 사회운동을 하지? 그런 의문이 컸다. 공정하지 않은 일처리에 실망한 곳도 있었다.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의심이 갔지만 내가 모르는 큰 뜻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애써 이해하며 넘어가려 했다.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그 큰 뜻을 알 수 없어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곳에서 새로운 기대를 또 걸었던 거다. 페미니스트들과 일하는 것, 페미니스트 리더는 다르지 않을까. 역시. 사람은 과거에서 배워야 하는데, 그들이 나를 속인 게 아니라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걸까.
지난주에 퇴사한 동료, 다른 비슷한 조직에서 비슷한 이유로 고통받는 단체의 활동가 친구와 함께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너무 유치해서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이유, 설마 그거겠어 하는 이유의 행동과 상황들을 공유하면서 한탄했다. 정말 우리에게 미래는 없는가. 공정한 심사기준에 따라 지원금을 배분해야하지만 싫은 사람에게는 낮은 점수를 준다. 자격이 충분한 사람도 문제제기를 한다거나 대들 기미가 보이면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사내 성폭력, 따돌림의 피해자를 구제할 생각보다는 가해자와 조직의 안위만 생각하는듯한 행동을 한다. 약속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