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우선쓰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야겠다.

시간이 필요한 사람

by badac

한달만에 가는 상담이라 걱정이 컸다.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하는 데만도 한참 걸릴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말하러 다니는 게 아니고 덜 힘들게 살 수 있는 힘을 기르려고 상담을 다니는 거니까. 그간의 내용을 요약해서, 동료는 회사를 그만 두었고 나는 그래도 다닐 생각이었는데 오랜 친구가 새로 시작하는 일에 어떤 식으로는 결합하고 싶고, 이제 이 지역의 생활은 그만할 마음이라고 말했다.

곁에 같이 앉아있기도 싫은 사람과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도 당장 그만두지 않고 월급을 위해서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점,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보면서 절대적으로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지내지 않은 점, 재미있어 보이고 하고 싶은 것들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는 점 등 많은 것들을 축복해주셨다.

변화를 기대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 한편 서글퍼 보이기도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이번에도 역시 정착과 적응, 믿을만한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시작하는 다음 단계의 어떤 일에서도 친구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늘 시작만 하고 뭘 이뤄내지 못해서 좌절감이 든다,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는 회사형 인간도 아니고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는 예술가도 아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 뚜렷한 목표와 행동력을 갖춘 사업가스타일도 아니고 자기 주관을 가지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이것저것 늘 시작만 해보다가 끝까지 가보거나 성과를 내는 순간까지도 못 가보는 것 같다. 나의 성향과 장점을 먼저 찾을 생각을 해야하는데 단점만 떠오르고 지금까지 살아온 행태에서도 뭔가 내 길과 실력이라고 할 만한 걸 못 만든 것 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의도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찾아서 해보자.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어느 정도 해낼 자신이 있다. 그게 지원사업이든, 친구의 사업이든, 내 사업이든, 취직이든, 아르바이트든. 남 좋은 일 말고 내가 했다는 게 명확하게 드러나는 나의 커리어와 나의 브랜드를 쌓고 싶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건드리면서 일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나에게 쌓인 경험이 있으니 내가 무언가를 할 때 다 도움이 될 것이다. 내게는 하고싶지만 지금껏 안 해봤던 일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장소와 관계에 대한 적응력, 실체가 있는 일로 만들어내는 구성력과 조직력이 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하게요. 얼마나 운이 좋게요. 일하고 싶을 때, 돈이 필요할 때 어떻게든 일거리를 찾았고 적은 돈을 벌면서도 잘 살 수 있었고, 꼬박꼬박 저축해서 일정 수준으로 불안을 잠재웠다.

“지금까지 해온 일, 앞으로 할 일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져요. 본인만의 색깔도 분명하고요.”

내가 자신만의 색깔과 목소리가 없는 사람일 리가 없다. 쓰는 일이 두렵지 않고 뭐라도 계속 쓰는 사람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을 리가 없다. 나는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니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사랑하는 데까지도, 내 마음을 드러내는 데에도. 내가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는 데에도. 앞으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걸 찾아야겠다. 모르겠으면 이것저것 계속 해보면서. 두렵고 불안하면 그 마음을 안고 다스리면서. 우울하고 무기력할 땐 너무 가라앉지 않게 노력하면서. 무엇을 원하는지 하나씩 해보면서, 큰 그림으로 나의 일을 완성시켜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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